롯데, 호텔 앞세워 브랜드 전쟁 헤쳐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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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글로벌 호텔들의 격전장인 뉴욕에 진출했다. 롯데호텔은 16일(현지시간) 맨해튼 중심부의 고급 호텔 ‘더 뉴욕 팰리스’의 간판을 ‘롯데 뉴욕 팰리스’로 바꾸는 현판식을 하고 본격 영업에 돌입했다.

롯데뉴욕팰리스는 지상 55층 규모에 5성급 호텔인 메인 하우스(객실 733개)와 6성급 호텔인 타워(176실), 23개의 연회장 등으로 구성된 뉴욕의 랜드마크 호텔이다. 53~55층에 걸친 스위트룸의 하룻밤 숙박료는 2만5000달러(약 3000만원)에 달한다. 롯데는 호텔 인수에 8억500만 달러(약 1조원)를 투자했다.

롯데 그룹에 롯데뉴욕팰리스는 수익 창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브랜드다. 롯데호텔이 글로벌 브랜드 전쟁에서 ‘롯데’라는 그룹 브랜드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브랜드 홍보를 위해 맨해튼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활용하고 있지만, 롯데뉴욕팰리스는 그 자체로 365일 24시간 롯데그룹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판식을 주관한 송용덕 사장의 설명은 한층 분명했다. 그는 “북미 시장에 롯데케미칼 등이 있지만, 롯데 브랜드가 들어온 것은 아니다. 뉴욕팰리스가 롯데 이미지를 좋게 만들면 유통과 제과 등 계열사들의 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호텔만 본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비즈니스를 보고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롯데는 아시아의 유통 거인이다. 하지만 선진국 시장엔 아직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다. 롯데 간판을 붙인 호텔을 앞세워 그 한계를 정면돌파하겠다는 포석이 뉴욕팰리스 인수에 담겨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과 TV가 글로벌 시장에 삼성 브랜드를 심고 있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최고급 호텔엔 세계의 저명인사들이 묵는다. 이들의 동선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는 과정에서 호텔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간다.

롯데뉴욕팰래스는 이 같은 브랜드 효과를 이미 톡톡히 누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 유엔총회 기간 중에 투숙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전용숙소처럼 활용했다. 그러나 이 호텔은 지난해 중국의 안방보험그룹에 인수되면서 중국 정부의 영향권 안으로 넘어갔다. 미국 조야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투숙하면 중국 측의 도청과 감시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과 중국이 신경전을 펼치는 가운데 롯데뉴욕팰리스가 ‘대통령의 호텔’이란 명성을 거머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거점 호텔을 앞세워 브랜드를 구축하는 교두보 전략은 ‘롯데호텔 모스크바’의 성공 사례가 모델이 됐다. 2010년 모스크바에 진출한 롯데호텔이 릿츠칼튼, 힐튼 등 경쟁호텔을 누르고 자리를 잡자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시장 점유율이 확 올라갔다. 모스크바의 호평은 롯데호텔이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 베트남(호치민ㆍ하노이), 중국(심양ㆍ엔타이) 등 인접국가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롯데호텔은 2020년까지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 50개 호텔을 운영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뉴욕뿐만 아니라 시카고,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이 대상이다. 각국 경제ㆍ문화의 허브 도시에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후 주변지역으로 호텔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송 사장은 “뉴욕팰리스 호텔 인수 후 공동경영, 위탁운영 등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오는 2020년까지 33개 호텔을 추가 인수할 계획이며, 이미 15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 소개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인수든 위탁경영이든 롯데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고려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롯데 측은 손님을 극진히 환대하는 한국식 서비스를 뉴욕팰리스 경영에 접목시킬 방침이다. 이것이 뉴욕에서 먹혀들면 한국 서비스 산업이 또 다른 한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는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글로벌 호텔체인 어디나 시설 면에서는 유사해진 만큼 인적 서비스의 차별화가 경쟁 포인트”라며 “일례로 경비원들까지 고객 애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도록 한 것이 롯데호텔 모스크바의 성공 비결이 됐다”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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