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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감 와중에 제1야당이 집안다툼을 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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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어제 중앙위원회를 열어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과 연계된 공천 혁신안을 가결시켰다. 이로써 문 대표는 재신임을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하게 됐다. 하지만 당내 분란이 수습된 것은 아니다. 당장 혁신안 처리 연기와 재신임 여론조사 철회를 요구했던 안철수 의원은 중앙위에 불참함으로써 항의 표시를 했다.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의원들도 무기명 비밀 투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집단 퇴장했다.

 문 대표도 비주류에 대한 감정의 앙금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는 공개 연설을 통해 “오늘 혁신위의 혁신안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혁신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안 의원을 비난했다. 그러자 안 대표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늘 중앙위의 성격은 혁신안 찬반이 아니라 사실상 대표의 진퇴를 결정하는 자리로 변질됐다”고 문 대표를 비난했다.

 새정치연합의 내홍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전·현직 대표까지 나서 감정 섞인 비난전을 벌이는 건 정상 궤도를 한참 벗어난 퇴행적 모습이다. 당내 갈등과 혼란을 수습하는 데 앞장서도 모자랄 마당에 오히려 분란의 중심에 서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꼴이니 기 막히고 한심할 따름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을 지켜봐온 국민은 ‘혁신’이란 간판을 앞세워 세력 다툼을 벌이는 이들을 보면서 피로감을 더 느낄 뿐이다.

  문 대표가 “재신임을 받겠다”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날(9일)은 국정감사 전야(前夜)였다. 정부의 국정운영의 잘못을 찾아내 바로잡는 게 국정감사다. 당연히 야당, 그중에서도 제1야당의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동시에 자신의 수권 역량을 드러내 보이는 장으로 활용해왔다. 그래서 역대 야당은 싸우다가도 국정감사 때는 역량을 총결집해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그러나 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은 국정감사와 동시에 대표 신임을 둘러싼 당내 분란에 휩쓸림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감과 역할 공간을 축소시켜 버렸다. 올 국정감사가 재탕, 삼탕식 질의와 고압적인 자세로 피감기관을 망신 주고 호통치기 식으로 전락한 데는 제1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문 대표가 국정감사라는 중요한 정치 일정을 의식하지 못하고 재신임 카드를 띄웠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강행했다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혁신안 통과에 고무된 주류 측은 재신임 여론조사를 추석 전에 밀어붙이려는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재고해야 한다. 당내 주도권 다툼보다 지금은 야당 본연의 역할인 국정감사에 집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