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부터 다시 … 서당서 인성교육하는 원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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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5일 원광대에서 봉황서당 수강생들이 김재룡 교수(왼쪽)에게 예법을 배우고 있다. 김 교수는 절할 때 손의 위치 등을 시범 보이며 설명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잠시라도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연못가의 봄풀은 아직 꿈을 깨지도 못하는데)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댓돌 앞의 오동나무 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전하는 구나).”

 지난 14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대학원 건물 3층에 올라서자 글 읽는 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졌다. 교수와 학생들이 명심보감 ‘권학문(勸學問)’ 편을 노랫가락처럼 운율을 붙여 암송했다.

 ‘봉황서당’이란 문패가 붙은 교실 풍경은 여느 대학 강의실과는 달랐다. 교수는 머리에 유건(검은 베로 만든 실내용 두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학생들은 강의실 나무마루 바닥에 무릎을 끓고 앉은 뒤 서탁 위에 책을 펼쳐놓고 수업을 들었다. 이들은 90여 분간의 수업이 끝나자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교수에게 큰 절을 올렸다.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얹고, 여자는 손을 반대로 교차시키며 머리를 깊숙히 조아렸다.

 원광대 봉황서당은 3년 전 개설했다. 이 대학이 추구하는 도덕대학의 인재 양성을 위해 선비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인문교양 교육에 나서보자는 취지였다. 캠퍼스 내에 서당을 만들어 정식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전국 200여 개 대학 중 유일하다.

 학생들은 명심보감과 사자소학, 한시 모음집인 추구 등을 매주 2시간씩 공부한다. 절하는 법이나 웃어른 모시는 법 등 생활 예절교육도 함께 받는다. 서예·다도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익힌다. 봉황서당은 매 학기 100여 명의 수강 신청을 받는 데 10~20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봉황성당은 김재룡(59) 교수가 이끈다. 그는 30대 초반까지 전남 구례 초동서사 등 전통서당에서 공부를 했다. 김 교수는 “한 겨울이면 벽 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에 방 윗묵의 물동이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며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얼음물로 세수한 뒤 다시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면학에 정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서예 부문 대상을 받았다. 지난 달에는 서울 인사동 아트플라자에서 열린 국전 초대작가전에도 참여했다.

 김 교수는 전통적인 선비의복 차림으로 주위의 시선을 끈다. 실내에서는 한결같이 머리에 유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는다. 문 밖을 나갈 때면 365일 갓을 쓰고 도포를 걸쳐 입는다. 김 교수는 “아침에 상투를 틀고 옷을 갖춰 입는 데만 30분 이상의 시간과 정성이 들지만 단정한 의복은 어느 자리에서든 언행을 신중하게 만드는 행동규범 양식이자 나를 지키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김도종 원광대 총장은 “격조 높은 우리 선비문화의 구심체 역할을 해온 서당의 전통교육에 현대화된 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가미해 봉황서당을 21세기에 걸맞는 인성교육의 요람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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