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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이 찜한 김민희 “첫 촬영 날도 내용 몰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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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홍상수 감독의 신작 주연 김민희(오른쪽). [사진 전소윤(STUDIO 706)·영화제작전원사]

“이런 촬영이라면 매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홍상수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춘 김민희(33)의 소감이다. 촬영 당일 배우들에게 ‘쪽 대본’을 나눠주는 홍 감독 특유의 방식이 생소할 법도 한데, 김민희는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김민희와 정재영이 호흡을 맞추고 홍 감독이 연출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하 ‘지금은…’)가 오는 24일 개봉한다. 홍 감독의 열일곱 번째 장편영화다. ‘지금은…’은 국내 개봉에 앞서 지난 8월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출품돼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정재영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첫 촬영 날까지도 자신이 연기할 인물에 대해 몰랐다는 김민희는 매일 현장에서 조금씩 영화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모두 모여 아침밥을 먹을 때 시나리오가 나와요. 밥이 안 넘어가죠(웃음). 대사를 외우기에 빠듯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런데 그게 스트레스로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극 중 김민희가 연기하는 윤희정은 그림을 그리는 여자. 그러던 그가 일 때문에 수원에 온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를 우연히 만나 술을 마시며 한층 가까워진다. 춘수는 은근히 수작을 걸고, 희정은 야무지게 뿌리치지 않는다. 희정은 춘수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한다. 별것 없는 연애 이야기 같지만, 막상 보면 이 영화는 퍽 신기하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언뜻 헷갈리기 십상인 제목만큼이나 닮은 듯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같은 경험을 했던 두 명의 다른 기억처럼 보이기도, 영화적 상황과 현실적 상황을 나란히 붙여놓은 두 개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어느 날 홍 감독이 김민희를 ‘툭’ 떠올리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감독님이 ‘영화 하나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저를 그냥 떠올리셨대요. ‘화차’(2012·변영주 감독)를 함께 찍은 이선균 선배를 통해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선배가 ‘홍 감독님 이번 영화 출연할 생각 있어?’라기에 ‘있다’고 했죠.”

술자리에서 가까워지는 희정(김민희)과 춘수(정재영).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영화제작전원사]

 극 중 희정은 마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쭈뼛대는 초식동물 같다. 도도하고 예민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수줍어 보이는 그 모습은 곧 배우 김민희의 매력이다. 캐릭터를 입고 있지만 배우 고유의 매력이 극대화된 모습으로 빛나는 영화. 홍 감독이 그만큼 김민희에게 꼭 맞는 옷을 주기도 했고, 김민희가 그만큼 영화에 잘 녹아들기도 했다. 김민희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궁금해지길 바라는 듯했다. “물론 희정이 저일 순 없어요. 하지만 어떤 부분에는 제가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웃음) 지난 8월 로카르노 영화제를 찾았던 김민희는 언어가 다른데도 즐겁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보며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현재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내년 개봉 예정)를 촬영 중이다.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몇 안 되는 여배우. 어느덧 그것이 김민희의 위치가 됐다. 배우로서 행복한 작업 환경이지만, 기대치가 올라간 데 대한 부담은 없을까. 김민희는 “책임감의 문제”라고 말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연기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예전보다 커진 건 맞아요. 그런데 그게 버겁다기보다는 오히려 힘이 돼요. 예전 같으면 ‘이게 아닌가’ 하면서 움츠러들었을 부분에서도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지를 수 있어서 좋아요.”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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