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만에 세웠다, 해군 몽금포 작전 전승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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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한국군 최초의 대북 응징 보복작전인 몽금포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15일 인천 월미도에서 ‘몽금포작전 전승비’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뉴시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임 만나 보겠네~” 민요 몽금포 타령으로 유명한 황해남도 용연군 몽금포. 이곳은 66년 전 한국 해군 특공대가 북한에 처음으로 응징 보복작전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1949년 8월 17일 해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북한의 몽금포항에 함정 6척과 특공대 20명을 투입했다. 한국 해군이 단독으로 작전을 결행한 대북 응징 보복작전의 전과는 상당했다.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시키고, 1척을 나포했다.

 몽금포 작전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일주일 전인 8월 10일 해군 인천경비부에서 관리하던 주한 미 군사고문단장 윌리엄 로버트 준장의 전용 보트가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군 정보당국은 남로당 공작원의 여동생을 짝사랑했던 해군 인천경비부 소속 하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 하사는 “로버트 준장의 보트를 몰고 월북하면 공작원 여동생과 결혼시켜 주겠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

 몽금포 작전 당시 JMS-302 정장(艇長)으로 투입됐던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해사 1기, 당시 소령)의 회고다.

 “(사병 하나가) 로버트 준장 보트를 몰고 북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동해에서는 태극기 단 함정이 올라가고(당시 좌익 승조원들이 해군 함정 4척을 몰고 월북하는 사건 발생), 서해에서는 성조기 단 보트가 올라가고…. 이래서 되겠는가’라고 역정을 냈다. 그래서 당시 해군본부 정보감이었던 함명수 소령이 보복작전을 제안해 실행에 옮기게 됐다.”

 해군 관계자는 “우리 해군 단독으로 감행한 몽금포작전은 대성공이었으나 평가를 받진 못했다”며 “당시 무초 주한미국대사가 ‘남한 부대의 38선 월경 위반사건’으로 규정하고 한국정부에 항의하는 바람에 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줄곧 한국전쟁의 시작이 몽금포 작전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역사적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랬던 몽금포 작전이 재조명받고 있다. 15일엔 해군의 숙원이었던 전승비 개막식을 한다. 해군 관계자는 “2012년이 돼서야 몽금포 작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졌다”며 “그해 9월 ‘전승비 건립사업’에 착수해 인천 월미도에 전승비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선 당시 참전자 7명에 대한 포상도 결정했다.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은 무공훈장 중 최상위인 태극무공훈장(1등급)을 받는다. 작전계획을 입안하고 특공대를 이끌었던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당시 소령)은 을지무공훈장(2등급)을, 김상길 예비역 소장(당시 소령, JMS-301 정장)은 화랑무공훈장(4등급)을 받는다. 작전이 성공한 지 66년 만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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