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案처럼 선언적 … 현직 의원 20% 배제는 의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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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4 면

당내 내홍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야당의 원조 격인 민주당 창당 60주년(18일)을 기념해 제작한 사진 때문에 소동이 빚어졌다. 9일 당대표실 배경에 걸린 이 사진(위)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거리 시위 모습이 가운데 상단에 자리한 반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좌·후 하단 구석에 배치됐다. “누가 당 주인이냐”는 당내 일각의 거센 항의가 제기됐고, 결국 11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강조한 사진(아래)으로 교체됐다. [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는 계파 갈등으로 와해 직전에 이르렀던 당을 구하기 위해 지난 6월 출범했다. 6월 23일 첫 혁신안을 발표한 이래 지난 7일 10차 혁신안 발표를 끝으로 임무를 마쳤다. 오는 16일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혁신안의 운명이 최종 결정된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재신임 카드까지 꺼내 들며 혁신안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 그러나 당내 비주류들은 혁신안이 문 대표의 권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혁신안을 어떻게 평가할까. 중앙SUNDAY가 국내 정치학계를 대표하는 한국선거학회 이현우 회장(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과 한국정당학회 임성학 회장(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의 대담을 통해 혁신안을 분석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진행됐다.


“의정 활동 감안한 공천 가산점 필요”


-혁신안으로 촉발된 진통이 심상찮다. 비주류가 반발할 만한 내용이 있나. ▶임성학=그런 부분을 콕 짚기는 어렵다. 다만 새 얼굴 영입을 늘리겠다는 것은 기존 정치인의 목을 친다는 의미가 된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를 통해 당 대표가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평가를 통해 현직 의원 중 하위 20%를 공천 배제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잘한 사람에 대해서도 가산점을 줘야 하지 않나. 나이나 선수(選數)를 따지지 말고 정책과 비전, 정치적 결과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이현우=새로운 룰이 만들어졌을 땐 자신이 손해 보지 않을까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혁신안 중에서 특정 계파에 유리할 내용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성차별처럼 나이에 대한 차별은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안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한다면. ▶이=선언적이고 규범적인 느낌이다. 정당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만든 안 같다. 새정치연합의 상황이나 맥락이 별로 보이지 않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 나는 그 이유가 혁신위원 대부분이 외부 인사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공감한다. 덧붙이자면 새정치연합이 어디로 갈지에 대한 비전과 좌표를 만들고 그에 따라 혁신안이 나와야 하는데, 처음엔 계파 분열로 인한 당 와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가 6차 혁신안 때에야 ‘민주적 시장경제체제’ 당론 얘기가 나왔다. 선후가 바뀐 셈이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항목을 든다면. ▶이=장애인·청년·여성을 꼭 집어넣어야 그 집단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나라든 국민의 대표는 엘리트 중에서 뽑힐 수밖에 없다. 청년을 대표로 세우는 것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을 잘 펼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한 거다. 외형상으로 비율을 맞추겠다는 건 단순한 생각이다. ▶임=정치적·전략적으로 미숙했던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지만 비례대표 확대에 대해선 동의하는 국민이 많다. 비례대표를 늘리면 어쩔 수 없이 정수가 늘어나게 되고 그 대신 예산을 동결시키겠다는 순서로 논의를 진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정수를 늘리자’고 하니까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논의가 물 건너가 버리게 됐다.


 -혁신안이 계파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될까. ▶이=최고위원회를 없애고 지역·세대·직능별 대표로 대표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내놨는데 그러면 영남은 이 계파가 잡고 호남은 저 계파가 잡는 식이 될 수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계파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감싸줄 수 있는 ‘보험’ 같은 성격이다. 어떤 형식이든 정당 내에서 분파가 이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임=기본적으로 정당에 파벌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파벌이 개인적 친소·이해 관계를 넘어 정책이나 이념 차이에서 만들어지고 경쟁한다면 바람직한 내부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롭고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


“당내 분권화로 추진력 떨어질 우려”


-혁신위 출범 당시 기대를 건 부분이 있다면. ▶임=당원 강화 논의에 기대를 많이 했다. 한국 정당들은 미국처럼 조직보다 후보(의원) 중심으로 개혁돼 왔다. 여기에 조직 중심의 정당이 나타나 후보 중심 정당과 ‘어느 쪽이 한국에서 더 좋은 모델인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혁신안도 결국 정당 조직의 약화로 나아갔다. 당원에게 의무는 더 많이 지우면서 국민공천권 등을 통해 당원의 권리는 빼앗고 있다. 그러면 당원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정당 강화를 주장하지만 약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당 내부적으로 ‘계파가 살려면 당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외부 컨설팅을 내부에서 받아들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무리가 많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선수’들이다. 혁신안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까지 굉장히 많은 진통이 따를 수 있다.


 -혁신안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은. ▶임=선출직 공직자 평가위는 좋은 생각이다. 다만 당내 인사도 참여하고 상위 피평가자에게 가점을 줄 필요가 있다. 또 시·도당에 권한을 분산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고 강화하겠다는 시도도 좋게 봤다. 전략공천위원회를 통해 전략 공천의 룰을 확립하자는 내용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당의 이념 등을 대표할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공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생각이 약간 다르다. 시·도당에 공천권을 준다는 건 궁극적으론 바람직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현재 시·도당에 그런 역량이 있느냐가 문제다.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독점해서 발생하는 폐해 때문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시·도당으로 넘기면 훨씬 더 심각한 혼란과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당무감사원이나 당원소환제 같은 견제 기구를 만들자는 건 좋은 아이디어다. 하나 제안하자면 비당원이 공천받기 직전에 입당하는 사례가 많은데 당의 정체성 강화 차원에서 적어도 공천 6개월 전엔 당원이 돼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하다.


 -반대로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내용은. ▶이=국회의원 10%, 광역의원 20%, 기초의원 30% 이상을 청년에게 의무적으로 공천하자는 아이디어는 최근의 노령화 추세와 모순된다. 인구 비례를 봐도 청년 못지않게 80대 이상 노인이 많다. 정치 신인에게 10% 가산점을 준다는 것도 ‘젊은 피’에 집착하는 구태의연한 생각인 것 같다. 이 제도를 도입해 어느 정도 기대했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임=당내 거버넌스를 분권화해 제대로 일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사무총장직과 최고위원회를 폐지하자고 했는데 최고위원들은 계파 대표로서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권역·세대·직능 대표가 모인 대표위원회로 대체하면서 사람 수만 늘리면 오합지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야당이 하나로 힘을 모아 추진력 있게 나아가야 하는 시기인데도 오히려 힘을 분산시키게 된다. 또 100% 국민공천단으로 경선을 치르면 당원의 박탈감이 커질 것이다. 여러 위원회를 만들면서 전원을 외부 인사로 구성한다는 것도 현실성 있는 논의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최선은 아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은 어떻게 보나. ▶임=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적절한 제안이라고 본다. ▶이=룰이 바뀌면 유권자 투표 행태도 바뀐다. 지지정당 투표에서 특정 정당 몰표 현상이 더 심해져 지역주의가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 중심 제도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는 지역구 의석이 비례 의석보다 훨씬 많은 지역구 중심 제도다. 그런데도 정당 득표율로 총 의석을 배분하는 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독일의 경우만 봐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반반이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어떻게 보나. ▶임=후보를 뽑는 방식은 정당의 고유 권한이다. 각자 방식을 정한 뒤 유권자에게 평가받으면 된다. 오픈프라이머리가 호응이 좋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다른 정당들이 따라 할 거다. 새누리당 주장대로 이 제도를 법률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외국 사례를 보면 여성을 정계에 진출시키는 데 가장 적극적인 게 진보정당들이다. 이들 정당 상당수는 하향식 공천을 통해 여성 후보를 내세웠다. 그러니까 반드시 오픈프라이머리가 가장 나은 제도라고 말하긴 어렵다. 미국에서 정당이 약화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오픈프라이머리다. 의원들이 중앙당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기 지역구만 잘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 다가올 총선·대선에서 승리하는 정당이 되려면. ▶이=당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야당이 존재감을 잃으면서 분당설까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위가 민주적 시장경제체제를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촉구한 것도 당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번 혁신안의 내용이 반영돼도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선거에서 졌다고 폐기해선 안 되고 필요하면 고쳐가면서 길게 끌고 가야 한다. ▶임=먼저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큰 그림에 대한 공감이 있으면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희생하더라도 리더십을 수용할 것이다. 지금은 작은 부분들만 강조되니까 자신의 유불리만 계산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정리=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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