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효자방지법, 가족 해체 부를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비 오는 출근길 초로(初老)의 택배원이 황급히 엘리베이터에 탄다. 땀이 비에 섞여 고약한 냄새가 퍼진다. 안쪽에 있던 딸은 고개를 돌리며 아버지를 외면한다. 딸 책상에 놓인 택배 물건 인수증에 쓴 글이다. ‘우리 딸 미안하다. 빗길 조심히 오려무나’. 몇 글자가 빗물에 번졌다. 지난해 감동을 자아낸 한 음료 광고다. 부모 마음 깊은 곳까지 내시경이 들어간 듯하다.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소득·재산이 기준을 넘으면 안 된다. 단 부모-자식 관계가 단절상태라면 수급자가 될 수 있다. 통화기록과 통장으로 왕래 단절을 입증해야 한다. 때로는 자녀한테서 부양기피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내 자식이 불효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런 비현실적 절차 때문에 “차라리 굶는 게 낫지”라고 포기한다. 택배원 아버지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2001년 4월 ‘부모 부양 안 한 자식에게 생계비 강제 환수’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경기도 평택시가 생계비를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19명의 자녀에게서 돌려받기 위해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다. 해설 기사 제목은 ‘효심 불량 제재’였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법무부가 불효자방지법을 준비하고 있다. 부모를 학대하거나 그 밖에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했을 때 자녀에게 증여한 재산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그런데 부모-자식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내세워 너무 깊게 가정사에 간여하는 게 아닐까. 2001년 구상권 행사 이후 불효자가 줄었을까.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한 해 2억원도 채 못 받아 낸다. 관련 공무원 인건비도 안 나온다. 오히려 집행 과정에서 부모-자식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결국에는 부자의 연을 끊어 버린다. 불효자방지법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이 법에는 증여한 재산을 이미 썼을 경우 물어내게 돼 있으니 기초생보제보다 연을 끊을 위험이 크다.

 부모는 자식이 미워도 재산을 줄 수 있다. 사업실패·실직 등으로 어려워진 자식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그걸 받고도 부모를 보살피지 않는 자녀가 밉지만 그렇다고 법까지 들이대면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김일순 골든에이지포럼 대표는 7일자 본지 인터뷰에서 “고령화 시대에 자녀도 힘들어요. 효 요구하지 맙시다”라며 ‘고령화 지혜’를 공개했다. 시대가 달라지면 효도 달라진다. 연금 사각지대 해소, 기초생보제 부양의무 규정 완화 등의 ‘사회적 효’를 튼실히 하는 게 맞을 듯싶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