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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연결돼야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 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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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북한 철도의 연결방안을 토론한 좌담회. 철도 연결 문제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10일 열리는 ‘유라시아 교통물류 국제심포지엄’에서 이 문제 등을 포함한 집중 토론이 예상된다. 왼쪽부터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여형구 국토교통부 차관, 이주영 의원,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이창운 한국교통연구원장. 좌담회는 지난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오종택 기자]

분단 70년. 한국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매달린 ‘섬 아닌 섬나라’가 돼 버렸다. 유라시아는 세계 면적의 40%, 인구의 70%,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한다. 한국과 유라시아의 대륙 교통이 단절되면서 과거 드넓은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정신적·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왜소해졌다.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 답답한 ‘섬나라’ 신세를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유라시아 교통물류 국제심포지엄’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이에 앞서 이주영(전 해양수산부 장관) 새누리당 의원,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여형구 국토교통부 차관, 이창운 한국교통연구원장이 모여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제로 조찬간담회를 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사회를 맡았다.

 ▶김영희=“지난 7월 14일~8월 2일 유라시아 친선특급 행사가 있었다.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상품이 아닌 사람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현되는 거냐’는 말이 나올 법한데.”

 ▶이주영=“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중학교 2학년 때 밤새워 읽었던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유정』에 나오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당시 묘사됐던 바이칼 주변을 지나면서 ‘우리 조상들이 다녔던 무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대륙국가였던 한반도가 분단으로 대륙과 단절되면서 한국은 인위적으로 ‘섬나라’가 돼 버렸다. 한국이 그동안 키워왔던 해양국가로서의 위상을 대륙국가와 접목시키면 세계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체험해 보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이창운=“유라시아 대륙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는 어찌 보면 용(龍) 모양에 비유할 수 있는데, 한반도가 용의 눈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철도 연결 운행은 유라시아 대륙철도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것으로 본다. 그래야 유라시아 철도망이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더불어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략이 함께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류길재=“유라시아는 우리 선조들이 활약하던 주요 공간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적 뿌리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유라시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에서 파생되는 이익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국가들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 유라시아 지역의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회복’과 ‘연결’이 통일을 논할 때 사용되면 좋겠다.”

 ▶김영희=“지정학적으로 ‘섬나라’가 됐고 정신적·심리적으로 왜소해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중요한데, 먼저 남북 철길을 뚫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좋은 방안이 있는가.”

 ▶류길재=“경의선이 2003년에 개통돼 여건만 조성되면 북한 신의주를 지나 TCR을 이용해 베를린까지 갈 수 있다. 반드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필요는 없다. 남북한 사이에 작은 신뢰가 조성되면 시범운행도 할 수 있다. 거대한 프로젝트도 작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김영희=“지난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 사이에 연계를 모색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남북 철도가 막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진행되지 않으면 중국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에 흡수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형구=“남북 철도 연결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ESCAP),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도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철도는 정치적 색깔이 없어 남북한 철도기술 전문가 교류 등을 통해 남북한의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창운=“북한도 남북 철도 연결이 득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김일성 주석은 사망하기 직전인 1994년 6월 말에 남북 철도를 연결 운행하면 연간 15억 달러의 운임수입을 벌 수 있다면서 사업 추진의사를 밝힌 바 있다. 남북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철도망에 연결되면 북한에 이득이 크다는 관점에서 경제적 측면에서의 남북 철도 협력사업을 우선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70년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북한 철도 인프라의 개선을 위해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동북아개발은행이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금융 인프라의 지원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영희=“남북 철도가 연결돼 진정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현되면 일본도 참여할 수밖에 없을 텐데 10일에 열리는 ‘유라시아 교통물류 국제심포지엄’에서 어떤 진전이 예상되나.”

 ▶여형구=“이번 행사에 100여 명의 해외 주요 인사가 참석한다. 러시아·인도의 관계부처 장관 등 50여 개국의 교통물류 분야 정부 대표, 샴샤드 악타 UNESCAP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다. 이들이 유라시아 대륙수송망에 관한 국가 간 제도와 운영 시스템의 호환성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단절 구간을 연결하고 국경 지역의 물류거점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개발 사업과 재원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의미 깊은 심포지엄이 될 것이다.”

 ▶이창운=“이번 참가국들은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전략을 위해 유라시아 수송망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관심이 높을 것이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철도는 통관 절차가 복잡하고 정시성이 결여됐다. 그리고 기술적 호환성 등으로 해상운송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가칭 ‘유라시아 교통물류 통합플랫폼’과 같은 단절 없는 원스톱 물류서비스 체제를 공동 구축하자는 제안도 할 예정이다.”

 ▶이주영=“한반도의 지정학·지경학적 강점만을 강조하기에는 동북아 주변 환경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남북 철도 연결이 늦어진다면 다른 수송로가 검토될 수도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사할린을 통해 대륙철도망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조심스럽게 검토한 바도 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은 동아시아 물류의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주변의 중·일, 북·일 간 새로운 협력 체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김영희=“진지한 토론 감사하다.”

글=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0월 제안한 개념으로 남북한과 중국·러시아·몽골 등 동북아 지역을 유럽과 철도로 엮어 역내 경제협력을 확대하자는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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