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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조회·정치자금 불법 의혹 여전 … 검찰선 무혐의 처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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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14면


3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 앞.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와 금융정의연대가 신한사태 5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검찰이 신한사태와 관련, 라응찬(77) 전 신한금융 회장과 신한은행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한은행의 고객계좌 불법조회 혐의에 대한 추가 고발장도 냈다. 이 자리에는 자신과 가족의 계좌가 불법조회당했다고 주장하는 전 신한은행 직원도 참석했다. 검찰은 이날 참여연대가 앞서 낸 불법 계좌조회 혐의 고발을 무혐의 처분했다.


 신한사태가 5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단체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도 불법 계좌조회 주장은 이어진다. 신상훈(67)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측근은 명예회복을 말한다. 신 전 사장의 대법원 판결도 남아 있다. 신한사태는 경남기업에 대한 대출 의혹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돼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사태는 2010년 9월 2일 신한은행(당시 행장 이백순)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은행의 고소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렀다. 금융권에선 라응찬 당시 신한금융 회장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핵심 당사자 3인(라응찬·신상훈·이백순)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산서 전달했다는 3억원 의혹 남아 검찰은 수사에 나서 2010년 12월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차명계좌 운용 의혹 등을 받은 라 전 회장은 혐의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했다. 이후 신상훈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2013년 말 2심에서 일부 횡령 혐의만 인정돼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영자문료를 부풀려 지급해 비자금으로 사용한 15억원 중 2억6100만원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받았다. 이백순(63) 전 행장은 원심과 같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신 전 사장은 4일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뭐라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나는 쫓겨 나왔다. 단 하루라도 신한으로 돌아가 명예를 회복한 후 물러나고 싶다”고 말했다.


 신한사태는 은행 최고경영진 간의 다툼에서 시작됐지만 사회적 파장이 커진 건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검찰의 수사 과정 등에서 드러난 불법 계좌조회 의혹, 정치자금 제공 의혹 때문이다. ‘남산 3억원’으로 대표되는 정치자금 제공 의혹은 수사 당시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은 비자금 3억원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백순 전 행장이 윗선의 지시로 2007년 대통령 선거 직후 서울 남산 자유센터 주차장에서 누군가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게 요지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3억원을 마련해 외부 인사에게 전달한 정황은 파악했으나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수사를 끝냈다.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다. 이후 시민단체가 남산 3억원과 관련해 라응찬 전 회장을 고발했으나 검찰은 최근 무혐의 처분했다.


 불법 계좌조회 의혹은 또 다른 축이다. 금융감독원은 2013년 7월 신한은행 종합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객동의 없이 개인신용정보를 1621회 부당 조회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 10월 참여연대는 라 전 회장 등을 불법 계좌조회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고발했다. 이들이 낸 불법 계좌조회 고발 건에 대해 검찰은 3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방법과 목적으로 계좌를 조회했다고 증명할 증거가 없다. 은행법·금융실명제법 등에서 정한 감사 범위 안에 있는 행위’라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야당 정치인들이 불법 계좌조회의 대상이 됐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금감원 자료와 신한은행의 계좌조회 기록을 검토한 결과 정동영·박지원·정세균·박영선 등 당시 민주당 의원의 계좌가 불법적으로 조회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이 이들과 동명이인인 고객의 계좌를 합법적으로 조회한 기록만 확인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 관계자들이 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신한사태 엄정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염태정 기자

 3일 대검청사 앞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 직원의 불법 계좌조회 주장에 대해 신한은행 측은 “감사 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조회”라고 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지난 3일 “3차 추가고발 건을 비롯해 신한과 라 전 회장의 불법 행위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3일 주인종 전 신한은행 여신심사그룹 부행장을 경남기업 부실대출 관련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감 과정에서 신한사태가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농협·KB국민 등 3개 은행은 2013년 4월 경남기업에 70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신한은행 지원분은 400억원. 일각에서 압력설이 제기됐다. 신한은행은 부실 가능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고 성완종 회장이 소유한 경남기업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성 회장은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신한은행 측은 “당시 지원은 외부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채권은행으로서 기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은행과 공동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신한사태는 한국 기업의 오랜 과제인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김선웅(변호사) 좋은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신한사태는 전문경영인이 과다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서 발생한 것이다. 선진적 승계프로그램의 부재도 요인”이라고 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권력화한 전문경영인에 대한 내·외부의 감시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남기업 특혜 대출여부 국감서 따질 듯신한금융그룹은 그동안 ‘탕평 인사’를 통해 조직 화합을 상당 부분 이뤘다는 입장이다. 신 전 사장 쪽 인물로 평가받는 인사를 자회사의 사장으로 임명하고 연임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한다. 올해 은행장 선출 때도 ‘비신비라(라응찬·신상훈 계열 아닌)’로 분류되는 조용병 BNP파리바 사장을 발탁했다. 그렇다고 내분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신한사태로 은행을 떠난 한 전직 간부는 “9·2사태(9월 2일은 은행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한 날)는 신한 직원에게 ‘광주 사태’와 같은 것이다. 상처가 너무 깊어 말을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신한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만 이건 분명하다. 라 전 회장, 신 전 사장, 이 전 행장 모두 신한의 명예에 흠을 남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조직을 떠났다. 조직과 후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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