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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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원내총무 중앙상임의장·국회부의장 등을 두루 거쳤고, 중후한 인품으로 인해 그를 총재로 추대하는데는 비민추까지도 비교적 거부감이 덜했다.
야당외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는 이해집산이 무상한 야당풍토에서도 계파를 바꾸지 않은 의리의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청주시의원에서 국회의원으로 진출학우 유진산씨의 그늘에서 정치를 익혔다. 진산이 갖가지 정치파동에 말려 여당의 지탄을 받을 때도 이총재는 한번도 겹눈질을 하지 않고 진산사후 류치송민한당총재와 함께 진산계모임인 견지동지회를 이끌어왔다.
9대 국회후반 견지동우회가 군소사단으로 밀리고 김영삼 씨의 강경파와 이철승씨의 온전파가 당권경쟁을 할때 이총재는 자기를 국회부의장으로 밀어준 김씨의 편에 섰다.
이후 김씨와 이총재는 한번도 노선을 달리한 적이 없으며 김씨가 당권을 다시 잡았을 때 신민당수석부총재를 지냈고, 5·17이후 김씨가 정계은퇴성명을 낸후 3개월간 신민당총재대행을 맡았다.
정치규제중에도 민주산악회의 회장으로 같은 길을 걸었으며 민추협을 관리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치나 인기보다는 인내와 우직함이 돋보이는 성격이라는 중평이며 재리에 밝지못해 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중책을 맡으니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당직이나 국회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고 여생을 보람있게 살겠다』는 각오를 피력.
아호는 인석. 고희 (올해 만70세) 를 넘겼으나 요즘도 관악산정도는 젊은이와 똑같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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