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오전 브리핑을 자청했다. 그러곤 “한·미는 현재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면서 미군 ‘전략자산’(첨단 전략무기)의 한반도 투입 시점을 탄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양국이 어느 정도 공감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의 이 같은 결정은 일종의 ‘맞불’ 성격이다. 남북 고위급 인사들이 마라톤 협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북한은 전날(23일) 잠수함 50여 척을 작전에 투입한 데 이어 24일엔 평안북도 철산군 기지에 있던 공기부양정 10여 척을 대동강 입구 남포로 전진 배치했다. 이에 한국군도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군의 첨단 전략무기들을 들여올 수 있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군의 전략무기 중 첫손 꼽히는 게 ‘하늘을 나는 요새’라는 별명을 지닌 B-52 전략폭격기다. 한국전쟁 당시 B-52로 업그레이드되기 전 B-29의 융단 폭격에 초토화된 경험이 있는 북한군 지도부는 아직도 공습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하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73개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평양에는 2채의 건물만 남았다”며 “북한은 지하철을 지하 100m 이상의 깊은 곳에 건설하고 대부분의 군 시설을 지하화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B-52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소 냉전 시기인 1950년대 초반 미국은 소련과의 핵전쟁에 대비해 B-52를 개발했다. 초도비행을 한 게 52년이다. 육지에선 탄도미사일, 해상에선 잠수함용 순항미사일, 공중에선 B-52에 핵폭탄을 탑재해 ‘핵 보복 3원(原)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었다. 개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미국은 100대 가까운 B-52를 여전히 운용하고 있다. 90년대 초 이라크전쟁 때 미국이 투하한 폭탄의 29%(2만5700t)를 B-52가 담당했을 정도다.
한번에 30t의 폭탄을 실을 수 있는 B-52는 그간 성능도 몇 차례 업그레이드했다. AGM-129와 AGM-86 등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미사일 32발과 수소폭탄 4발을 B-52 1대에 실을 수 있다. B-52 자체가 핵무기인 셈이다. B-52가 뜰 경우 ‘호위무사’ 격으로 F-22(랩터) 스텔스 전투기나 F-15 전투기도 함께 움직인다. 이 때문에 B-52는 단순히 폭격기 1대로만 볼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미국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돼 있는 B-52는 지난해 2월 전북 직도에서 폭격 훈련을 했고 2013년 키 리졸브(KR), 독수리(FE) 연습 당시에도 세 차례 이상 한반도에 출격했다. 이때마다 북한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2월 미군이 서해에서 B-52 작전을 펼치자 북한은 “핵타격 연습을 했다”며 반발했다. 또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합의했던 북한이 B-52 출격을 이유로 남북 합의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B-52 외에 F-22 스텔스 전투기, 2013년 미국에서 한반도까지 논스톱으로 비행해 폭격 훈련을 하고 돌아갔던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핵추진 잠수함 등도 검토 대상이다. 과거 F-22 스텔스 전투기를 한반도에 훈련차 들여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동안 종적을 감춘 적도 있다. 군 당국자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들이 언제 어떻게 공격해올지 몰라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일본 요코스카에 정박해 있는 미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한반도 근해에 투입시키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한 잠수함 투입에 대한 맞대응이다. 북한 재래식 잠수함이 배터리 충전을 위해 2~3일 간격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는 데 반해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2~3개월 동안 잠수해 작전을 펼칠 수 있어 그만큼 더 위협적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