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관진·김양건 만나자” … 남 “황병서 나와라” 역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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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고위급 접촉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이었다. 22일 오후 3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 접촉’ 소식을 전했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정한 최후통첩 시한(오후 5시)을 2시간여 앞두고서다. 국방라인 대신 통일·외교라인이 움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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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1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전화통지문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은 전통문 수령을 거부했고, 오히려 전력을 증강했다. 전방의 북한군 역시 이날 오후 5시를 기해 전시체제로 전환하며 방사포(다연장 로켓)와 장사정포를 사격진지로 옮겼다.

 한국군 역시 전방의 전력을 강화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 군은 단호하게 응징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물밑에서 청와대 안보실과 북한 국방위원회 채널이 가동됐다. 김규현 1차장은 22일 브리핑에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1일 오후 4시 전통문을 보내왔다”며 “21일 혹은 22일 판문점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일대일 접촉을 하자는 제의였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2시간 만인 21일 오후 6시 답신을 보냈다. 김 실장 명의로 보낸 전통문엔 김양건뿐 아니라 북한군을 대표하는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나오라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군부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22일 청와대 제안을 수용했다.

 북한의 선(先)제안에 청와대가 수정 제안을 했고, 북한이 이튿날 이를 수용하면서 김관진-황병서 접촉은 성사됐다.

 분위기가 반전된 데는 남과 북 모두 군사적 긴장상태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겉으론 “북한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고 했지만 북한이 대화를 제안해 오자 피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내부 결속과 국제적 관심 끌기에 성공한 북한 역시 군사적 충돌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군사행동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둔 북한의 계산된 전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극단적 카드’를 썼다는 것이다. 김양건 비서가 먼저 대화를 제의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나 북한이 ‘48시간 통첩’ 이후 보인 행보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복기해 보면 북한은 지난 20일 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비상확대회의 소집 소식과 회의 결과를 곧바로 보도했다. ‘준전시(準戰時) 상태’를 선포하고 전방 지역 부대들에 ‘불의 작전’을 준비토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이끌었던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21일 평양 주재 외교관과 외신들을 대상으로 “확성기 방송이나 ‘삐라’ 살포는 노골적인 심리전으로 남측의 무모한 도발은 기필코 값비싼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외무성에선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 뒤를 받쳤다. 국제사회를 향해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친 셈이다.

 연세대 김용호(정치외교) 교수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전 때를 보면 북한은 군사행동을 취할 때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한다”며 “이처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언론 활동을 한 건 ‘누가 좀 말려 달라’는 식이어서 다르다”고 말했다. “일종의 러브콜”이란 것이다. 국제사회가 자제를 요청하면 ‘통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명분도 쌓고 군사적 행동에서 퇴로를 여는 차원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군사적 행동 직전 대화를 제안한 건 거꾸로 명분 쌓기용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협상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긴 뒤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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