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와 붙고 싶다” 23세 이케빈 ‘코리안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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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투수를 꿈꾸는 재미동포 이케빈.

지난 3일 프로야구 해외파 트라이아웃이 열린 고양야구장. 강속구가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시원시원했다. 펑! 펑! 스카우트들은 대포알 같은 공을 던지는 재미동포 2세 오른손 투수 이케빈(23·한국명 이헌주)을 주목했다. 눈도장을 받은 그는 24일 열리는 2016년 프로야구 신인 2차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에 지명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1일 부산 경성대에서 이케빈을 만났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조리 있게 다 했다. 대학에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국제협상)을 전공한 그는 평점 3.2(4.0 만점)를 받았을 만큼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한국 프로야구에 도전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그는 미국 뉴저지주의 파스캑밸리고교 3학년 때까지 포수를 봤다. 이케빈은 “연습 삼아 공을 던졌는데 스피드건에 시속 147㎞가 찍혔다. 우연히 이 장면을 본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카우트가 고교팀 감독을 설득해 투수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이케빈은 미국대학스포츠연맹(NCAA) 1부 리그에 속한 로드아일랜드 대학에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3년간 평균자책점이 8점대로 썩 좋지 않았다. 빠른 공을 던졌지만 투구 폼이 다듬어지지 않았다. 4학년 때 라마포 대학으로 옮겨 지난해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케빈은 “ 날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한 아버지를 생각하면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케빈의 아버지는 1980년대 말 단돈 5만원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 현재는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케빈은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고양 원더스를 소개받았다.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8월 말 한국에 들어왔다. 이케빈은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짐을 몽땅 싸들고 나왔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 테스트를 준비하는 도중 원더스가 해체됐다. 그는 “실망이 컸다. 돌아오라는 어머니에게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1년은 버티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11일 해체된 원더스는 새 팀을 찾지 못한 선수들을 위해 11월 말까지 훈련장소를 제공했다. 이케빈은 통사정 끝에 다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었다. 경기장 옆에 오피스텔을 얻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하루 3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쳤다. 원더스에서 훈련하며 NC·한화 등 스카우트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을 기회도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재미동포가 곧바로 프로에 입단할 방법이 없었다. 신인 드래프트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는 또 한 번 좌절했다. 원더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뒤로는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홀로 훈련했다. 90㎏이 넘었던 몸무게는 79㎏까지 빠졌다. 이케빈은 올해 초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3개월가량 공을 던지다 먼 친척인 정학수(롯데 원년 멤버)씨의 소개로 경성대에 자리를 잡았다. 훈련장소가 수차례 바뀌는 동안 그의 공은 점점 더 빨라졌다. 현재 이케빈은 최고 시속 152㎞의 강속구를 던지고 있다.

 요즘 이케빈은 한국야구를 챙겨보며 타자들을 분석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그는 “이용규(한화)처럼 빠르고 콘택트 능력이 좋은 타자가 많아 걱정”이라면서도 “박병호(넥센)·테임즈(NC)와의 대결이 기대된다. 로저스(한화)는 한국에서 처음 봤다. 선발 맞대결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케빈은 아직 실전에서 검증을 받지 못했고 견제·수비 등 투수 기본기가 부족하다. 그러나 ‘재외국민 2세’에 해당해 병역의무가 없다. 2차 드래프트 첫 번째 지명권을 가진 kt가 여러 차례 경성대를 찾아 이케빈을 관찰했고, 다른 팀들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케빈은 “ 꼭 성공해서 아이들이 닮고 싶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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