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소설가 김훈의 뒷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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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2일부터 6월27일까지 북중 접경지대 1400km를 다녀왔다.
압록강부터 두만강까지의 여정, 난생 처음 보고 듣는 현실이었다.

사실 말이 기자였지 분단의 현실이나 사건 사고의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었다.
여행과 문화 부문만 이십 년 넘게 담당했을 뿐이다.
내 일이 아니라 남 일만 같았던 그 여정에 난데없이 끼게 된 게다.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다. 처음이라 긴장도 했다.
설렘과 긴장으로 시작된 31명의 여정에 소설가 김훈선생도 함께였다.

여러 번 만나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과 표정에 집중했었다.
그의 표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했었고 그것으로 인터뷰 지면을 꾸몄었다.

이번 ‘평화 오디세이 2015’ 여정 또한 김선생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표정을 살피고 사진으로 담아내야 했다.
그것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녀와서 사진을 정리하며 스스로 의아한 사진들이 제법 있었다.
유독 많은 김선생의 뒷모습 사진이었다.

사람의 뒷모습을 찍는 일, 흔치 않다. 그런데 한두 컷이 아니었다.
그 사진들을 모아놓고 고민했다. 왜 그랬을까?

신압록강대교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봤다.
김선생이 망원경으로 다리를 살피고 있었다.

일단 그 모습을 찍었다.
망원경으로 멀리 정확히 보려는 그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카메라가 향했다.
그 후 그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가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뒷모습과 대상에 관심을 두었다.
30명의 앞모습 사진을 정신없이 찍다가 정신 차려 보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첫 뒷모습은 압록강 유람선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조그만 망원경을 보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서서 관찰하다가 배가 흔들려 답답했는지 난간에 망원경을 올려두고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뭘 보시냐고 물었다.
단둥과 신의주를 오가는 배를 살펴보던 김선생이 답했다.
“뱃머리에 ‘인흥433’ 이라고 적혀있어요.”

그 다음은 광개토대왕비에서였다.
유리로 된 건물 안에 광개토대왕비가 있었다.
유리를 통해 사진을 찍는 것은 괜찮으나 내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금지였다.

유리에 주변 환경이 반사되어 잘 뵈지 않았다.
어떻게든 찍으려 건물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다 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망원경으로 광개토대왕비를 훑고 있는 김선생의 뒷모습을….

광개토대왕릉을 오를 때였다. 일행들은 삼삼오오 돌계단을 올랐다.
김선생은 뒤처져 혼자 올랐다. 또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군총을 허겁지겁 올랐다.
일행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앞에서 찍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그런데 누군가 먼저 올라 장군총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김선생이었다.

백두산에선 너나없이 탄성을 질렀다.
비 오는 산을 올랐는데 당도하니 그치고 천지가 열렸다.
기대 못 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데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탄성과 환희의 모습들, 정신 못 차리고 찍었다.

그러다 망원경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김선생의 모습을 보았다.
아차 싶었다. 김선생이 바라본 것을 놓쳤다.
나중에 김선생이 쓴 글을 통해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백두산 천지의 검은 바위에는 화산이 폭발할 때 끓어오르던 불의 힘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고 썼다.

다녀 온 후, 모 선배와 이 일을 이야기했다.
선배가 말했다.
“김훈선생 글의 힘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해. 본 것을 그대로 담담하게 쓰는 디테일의 힘.”

모자란 사진쟁이는 김선생의 뒷모습을 봤을 뿐인데, 김선생이 마주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지난주, 시끄러웠다. 포탄이 서로 오고 갔다.
다시 궁금해졌다. 김선생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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