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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학교 수업 내용, 지역 명물 이용해 착한 게임 만들어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교육용 개임 앱 `두들 스프린트 수원화성`을 개발한 `팀 이맥` 멤버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정민(9)·추윤재(13)·오승헌(13)·김현서(13)군.

게임이라고 하면 때리고 부수고 총을 쏘며 서로를 공격하는 자극적인 장면이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그 가운데 유익한 소재로 말랑말랑한 게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제작하는 초등학생들이 있어 화제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수원 팔달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네 명의 게임 제작 동아리 '팀 이맥(Team Emag)' 학생들이죠. 스마트 기기에서 동작하는 교육용 게임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올해 5월 개최된 국내 최대 규모 게임 전시회 ‘2015 굿게임쇼 코리아’에 최연소 개발자로 참석해 직접 만든 앱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지금은 ‘삼성 주니어 소프트웨어 창작대회’를 준비 중인 어린이 개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냥 좋아서요! 게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게임 개발 동아리를 만든 이유에 대한 추윤재군의 명쾌한 답변입니다. 팔달초 6학년 김현서·오승헌·추윤재군의 인연은 6년 전 시작됐습니다. 축구를 좋아해 7살 때부터 같이 공을 차고,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며 친하게 어울렸던 거죠. 그러다 요즘 출시되는 게임이 너무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6학년이 된 지난 3월 건전한 게임 앱을 개발하는 동아리 ‘팀 이맥’을 결성했습니다. ‘이맥’은 ‘Game’의 철자를 뒤집은 것입니다. ‘점점 과격해지는 게임을 뒤집어 보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죠. 승헌군의 친동생이자 막내 멤버, 같은 학교 2학년 오정민군은 형들이 하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어깨 너머로 구경하다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게임 ‘두들 스프린트 수원화성’

팀 이맥이 처음 만든 게임이자 대표작은 ‘두들 스프린트(Doodle Sprint) 수원화성’입니다. 아이들이 디자인한 외계인 캐릭터를 터치하면 점프 혹은 이단 점프가 가능합니다.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캐릭터를 살리는 게임으로 아이템을 먹거나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점수가 추가됩니다. 게임의 배경은 수업시간에 배운 수원화성에서, 구조는 아이들이 모두 즐겨하는 게임인 ‘쿠키런’에서 각각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의 장애물은 봉돈·서장대·화홍문·장안문·화서문과 같은 수원화성의 주요 명소로 설정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한 수원화성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의도죠.

3월 29일, 팀 이맥은 게임 제작에 돌입합니다. 기본 배경과 움직임을 만들어 나간 지 일주일 만에 성곽을 추가하고, 그 다음 주에는 캐릭터와 점수 화면을 붙였습니다. 4월 19일 장애물과 초시계, 소리까지 넣어 전시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완성도로 앱을 탄생시켰죠. 게임 제작에 한 달이 채 안 걸린 셈입니다. 팀 이맥은 이후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배경으로 한 ‘투 애니멀스(2 Animals)’, 공공안내 그림문자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탭 탭 픽토그램(Tap! Tap! Pictogram)’ 등을 제작합니다. 윤재군은 “사람들이 유익한 게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게임에 담고 싶은 메시지죠. 팀 이맥 멤버들은 “교육적인 소재로 게임을 만들어 ‘게임’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는 데 힘쓰고 싶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게임 제작은 공부이자 놀이"

오규환 교수

동아리를 지도해주는 분은 승헌·정민군의 아버지이기도 한 오규환 아주대 미디어학과 교수입니다. 오 교수는 “현장에서 대학생들을 많이 접하는데, 한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인지 스스로 아이디어를 창작하고 그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평소 즐겨 하고 좋아하는 게임이라는 가벼운 소재를 통해 소프트웨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한다”며 “이 활동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해야 할지도 스스로 깨달아간다. 게임 제작은 좋은 배움의 도구인 동시에 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되었으면 하는데, 사실 한국에선 그런 여건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게임을 만들며 조사하는 과정에서 쌓은 지식이나 직접 게임을 즐기며 배운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서군은 “팀 이맥 활동은 어려운 걸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정리했죠.

게임 개발자가 꿈은 아니랍니다

팀 이맥 아이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까요. 현서군과 윤재군은 각각 과학자와 수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서로의 장래희망을 알게 된 아이들은 “야, 우리 그럼 같이 해. 같이 하면 되겠다”라며 들떴습니다. 승헌군의 꿈은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당일은 프로그래머였습니다. 현재 준비하는 소프트웨어 대회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는 듯했죠. 막내 정민군의 꿈은 사진기자. 사진을 찍히는 것 보단 찍는 쪽을 좋아해 친형 승헌군의 모습을 자주 카메라에 담아본다고 합니다. 어린이 앱 개발자답게 기계 장비를 사용하는 직종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네요. 방 한 켠에 모인 소년들은 좋아하는 걸 배우고 익히며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초등 2학년 게임 개발자 오정민군 인터뷰

직접 그림 그려 디자인하고 피아노 연주해 배경음악 넣고

직접 만든 게임 `더 엑시트`에 넣을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오정민군.

팀 이맥 인터뷰 초반, 쑥스러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방 구석에 혼자 앉아 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멤버들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작은 체구, 유독 수줍음이 많았던 동아리의 막내 정민군이었죠. 정민군은 초등학교 2학년,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참신한 자신만의 게임, ‘더 엑시트(The Exit)’를 개발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무슨 게임을 만들어?’라는 의문은 시간이 지나면서 싹 사라졌습니다. 쑥스러움을 타긴 했지만 자신의 게임을 소개할 때만은 누구보다 씩씩하게 전문 용어들을 줄줄 꾀며 이야기를 해나갔답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출구(Exit)로 나가는 게임입니다. 벽에 부딪히면 안 되는 범퍼카 게임 구조를 가져왔죠. 게임의 캐릭터는 한 나라의 왕자와 공주입니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즐겁게 놀이를 하는 도중 갑자기 들이닥친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며 돌연 ‘컵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 떨어진 사람은 꼼짝없이 컵으로 변해 버리는데요, 왕자와 공주도 예외는 아니겠죠. 그리하여 왕자컵과 공주컵이 된 이들이 탈출을 위해 출구를 찾아나서는 게임입니다. 모든 출구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왕자와 공주는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답니다. 정민군은 이러한 동화와 같은 스토리부터 아이템, 규칙 그리고 직접 그린 그림을 토대로 한 디자인 등을 게임에 담아냈습니다. 게임은 총 6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계를 올라갈수록 각종 장애물과 난해한 벽들이 추가되어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앞으로 악당 보스 캐릭터를 컵 세계에 투입시켜 게임의 재미를 더할 계획이라네요.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정민군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피아노학원에서 배운 모차르트 소나티네와 브람스 헝가리무곡 5번을 녹음해 게임에 넣었지요.

정민군이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게임 만드는 게 좋아요"입니다. 덧붙여 “사람들도 같이 제 게임을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작지만 큰 포부를 밝혔습니다.

글=김아영 인턴기자 kim.ahyoung12@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woo.sangjo@joongang.co.kr

게임 제작 이렇게

공공안내 그림문자를 맞추는 게임 `탭 탭 픽토그램` 화면을 보며 오승헌군이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위 사진). 회의 후에는 마인드맵을 그려 아이디어를 정돈해 나간다.

① 게임 아이디어 회의 팀 이맥 멤버들은 주 1회 모여 서로의 게임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어떻게 개발시켜 나갈지 회의합니다. 모임 장소는 승헌·정민 군의 아버지 오승헌 아주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가 근무하는 대학 연구실. 이곳에 설치된 갖가지 장비들은 앱 개발에 아주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또래들인 만큼 회의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잦은데요, 의견 충돌이 클수록 좋은 아이템이 나온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② 마인드맵 그리기 회의를 통해 아이템이 채택되면 다 같이 마인드맵 그리기에 돌입합니다. 게임의 구조를 이미지화하는 거죠.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디자인과 규칙을 구체화시켜 나갑니다.

③ 게임 제작하기 팀 이맥이 사용하는 게임 제작 프로그램은 ‘게임 샐러드(Game Salad)’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우스로 끌어다 놓기만 하면 되는 ‘드로그 앤 드롭’ 기반이라 프로그래밍이나 코딩 없이도 손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어 초보자들에게 최적의 도구입니다. 무료 버전을 사용해도 웹부터 애플 앱스토어에까지 출시할 수 있는 게임 제작이 가능하죠. 단, 영어 버전 밖에 없어서 유튜브에서 사용 설명 영상을 찾아보며 기술과 용어를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합니다. 손쉬운 도구이지만 손에 익기까지 얼마간은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④ 게임 출시 게임은 PC버전으로 먼저 제작합니다. 이후 오승헌 교수의 도움으로 아이패드와 안드로이드 앱으로 변환시킵니다. 소리 임팩트와 그림은 무료 공개 사이트에서 적절히 찾아 쓰기 때문에 비용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앱스토어에 등록하면 게임 출시 완료.

수원화성의 명소들로 구성된 장애물을 뛰어넘고 코인을 모아 점수를 겨루는 게임 `두들 스프린트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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