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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근로자 죽음으로 내몬 산재 은폐는 국가적 수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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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충북 청주의 한 화장품 제조공장에서 지게차에 깔린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은폐하려다 죽음으로 내몬 사건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산재 은폐 실태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이 공장에선 지난달 말 지게차 사고가 일어난 직후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출동한 119 구급대를 돌려보내고, 회사 지정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돼 근로자가 숨졌다고 한다. 이처럼 119 대신 지정병원으로 직접 이송하는 것은 산재를 은폐하는 전형적 수법의 하나다. 이 사고는 경찰에선 단순 교통사고로, 지방노동청에선 지게차 운전자 과실 조사로 처리되던 중 JTBC 뉴스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산재 은폐는 우리 산업현장의 고질적 폐해다. 실제로 산재 중 숨길 수 없는 사망사례만 보고되고, 산업현장의 사고는 은폐되는 일이 다반사다. 청주의 이 화장품 회사도 지난해와 올해 모두 3건의 산재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은 1위지만 산재 재해율은 평균 이하인 기형적 통계가 나오고, 전 세계로부터 ‘산재 은폐국’의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 조사’에선 직종별로 산재경험 근로자의 7.2~20.3%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고 응답했다. 산재 은폐 사실이 드러나 산재보험에서 환수한 금액은 지난 5년간 3000억원에 이른다.

 산재 은폐가 횡행하는 것은 은폐 시의 불이익은 적은 반면 보고 시 불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선 은폐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1000만원 내의 과태료 처분이 전부다. 반면 산재 발생 기업은 무거운 벌점으로 정부 입찰 및 수주에 불이익을 받는다.

이 같은 산업현장의 산재 은폐 환경이 이번 화장품 공장 근로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이젠 산업재해 처리를 근로자 보호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산재 은폐 실태를 점검하고, 은폐 시엔 사업주 형사처벌과 징벌적 과태료 등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한다. 산재 방치는 피해 근로자의 가정을 파탄시킬 뿐 아니라 결국 기업의 경쟁력도 갉아먹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