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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타리스트의 위로 “위안부 할머니, 정말 미안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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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곡 ‘꽃보라 되어’를 발표한 재한(在韓)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 직접 쓴 뮤직비디오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조문규 기자]

“고백합니다/ TV 뉴스와 신문 기사를 통해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놀랍습니다/(중략)/저는 너무나 미안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오래도록 위로의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후략)”

 잔잔한 기타 선율에 실려 나오는 한 일본인의 고백. 화면엔 그 주인공인 남자가 상념에 잠긴 채 기타를 치고 있다. 그와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 등이 흘러간다. “부디 이 노래가 그 옛날 그 소녀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탱고풍의 밝은 리듬과 함께 나지막하지만 진심이 담긴 내레이션이 끝난다.

 지난 5일 유튜브에 공개된 ‘꽃보라 되어(花吹雪になって)’라는 곡이다. ‘위안부 할머니 위로곡’이라는 부제를 단 이 곡은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54·畑秀司)가 썼다. 27년째 한국에 살면서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자녀 넷을 둔 가장(家長)이다. 19일 만났을 때 그는 “곡을 발표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그런 (위로의) 마음을 담아 곡을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본 극우단체의 혐한 활동이 심해지면서 주변인들이 ‘일부러 나설 것 있느냐’고 말렸어요. 일본에 사는 형님 등 가족 걱정도 됐고….”

 그럼에도 올해는 넘기고 싶지 않았다.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 게다가 할머니들의 별세 소식이 자꾸 들려왔다. 지난 8월 1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광복절 담화를 듣고 나자 ‘곡 발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리 담화는) 전쟁 속에서 모두가 피해자라는 식이잖아요. 사과가 빠졌습니다. (문제를) 피하려고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한 사람들이 남아있는데 배려해야지요.”

 그는 이번 곡의 내레이션을 쓰면서 “정말 미안합니다(本<5F53>にすみません)”라는 말을 집어넣었다. 한 개인이고, 아베 총리식 기준으로 전후(戰後) 세대에 해당하지만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그의 페이스북에 “응원한다”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한국에 온 것은 1988년. 일본어 강사 생활을 거쳐 38세에 직업 기타리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유튜브 기타신동’으로 유명해진 정성하군을 3년간 지도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가수 우진희와 ‘블루 치즈’ 팀으로 활동 중이다. 우씨는 ‘꽃보라 되어’에 가사를 붙인 버전을 노래했다. 노랫말은 포크 듀오 ‘사월과 오월’ 출신인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장이 썼다. ‘꽃보라’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꽃잎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빗댄 것이다.

 하타는 “내가 일본인이라는 걸 잊고 살 만큼 정을 베푼 한국 가족·친구·동료들 덕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서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음악을 선사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벤트처럼 비칠까봐 조심스러워요. 뜻을 같이하는 일본 뮤지션들이 잇따라 나와서 다 함께 위로 공연하는 날이 왔으면 해요.”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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