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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대중화 앞장 선 개그맨 김현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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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가….”

개그맨 김현철(45)은 방송에선 ‘어눌한 꺼벙이’로 그려진다. 실제 만나보니 말은 조금 더듬었다. 그러나 전혀 어리숙하진 않았다. 그는 서울예대 시절 연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의 전설이었다고 한다. 동아리 회장에 각본, 연출, 주연을 맡았던 그다.

그러던 김현철이 요즘 클래식 대중화에 열심이다. 은평 인터내셔널 유스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와 샤롯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장이며, 클래식 공연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를 연다. ‘이숙영의 러브FM’의 ‘어설픈 클래식’에선 클래식 해설자다. 그를 만나 ‘갑자기 웬 클래식이나’고 물었다.

“제가 데뷔할 때 코미디언이 웃길 수 있는 방법은 바보처럼 보이는 거뿐이었어요. 제가 말을 좀 더듬는데 그걸 살리다 보니 이미지가 굳어졌죠. 젊은 친구들이 저 보고 “말 더듬어 봐라”고 하는 거예요. 결혼도 하고 딸도 있는데. 이제 그런 이미지(바보 연기)는 과거로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입견을 깨기가 참 어렵네요.”

-클래식과의 첫 인연은.

“학창시절 주말명화로 ‘아마데우스(1984년)’를 봤다. 그때 몸이 몹시 아팠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아픔이 싹 가셨다. 그런 순간을 카타르시스라고 하나. 바로 판을 샀다. 그 후로 클래식에 빠졌다.”

김현철은 94년 데뷔한 뒤 방송에서 종종 지휘봉을 휘두르는 개그를 보였다. 그가 본격적인 클래식 활동에 나선 건 2012년이다. 한 행사에서 그에게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클래식’이라고 대답하니 다들 빵 터졌다고 한다. 그 자리서 클래식 얘길 개그를 섞어 풀었다. 바로 라디오 방송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해 클래식 행사에선 그가 ‘20곡 정도 왼다’고 하자, 관중이 ‘조금만 보여줘라’고 부탁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실제로 지휘를 하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잡긴 잡지만, 스스로를 지휘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휘 퍼포먼스(performance)’를 한다고나 할까. 20년간 사진만 다룬 대가 앞에서 3년 한 아마추어가 ‘사진 전문가’ 행세를 할 순 없잖은가. 그래서 나보다 어린 지휘자들에게 레슨을 받고, 그들에게 ‘선생님’이라며 깍듯하게 존중한다.”

김현철은 아직도 악보를 몰 줄 모른다.

-불리하진 않나.

“그렇다. 그러나 레퍼토리 20여 곡은 악보를 외웠다. 주로 서곡을 외운다. 서곡은 짧지만 오케스트라 구성이 다 들어있다.”

-곡 해석은 어떻게 하나.

“사실 기본적인 곡 해석은 오케스트라가 다 꿰고 있다. 그래서 나만의 해설을 한다. ‘농구공을 통통 튀기는 느낌으로’ ‘물이 넘실넘실, 출렁출렁 하는 느낌으로’라는 식으로. 안단테나 아다지오보다 더 쉽지 않나.”

-제일 좋아하는 곡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이다. 유튜브에 이 곡을 지휘 퍼포먼스하는 영상이 있다. 재밌는 부분은 뺐다. 온라인에 다 올리면 실제 공연에 오지 않는다(웃음).”

-앞으로 계획은.

“이제는 점잖게 웃기고 싶다. 클래식을 개그 소재로 삼으면 한동안 경쟁상대가 없을 거다. 유학을 가서 정식으로 음악공부도 하고 싶다.”

-‘개그맨’이란 타이틀이 클래식 활동에 방해되지 않을까.

“재미와 경박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대중이 클래식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데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철재 기자, 황수현 대학생 인턴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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