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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홍의 정치 IN] 집터와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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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로 맨 먼저 생각한 곳은 계룡산이다. 아마도 지금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곳인 듯하다. 그러나 계룡산은 도읍지로선 적합지 못했다. 협소하고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한양을 생각한다. 정도전과 무학대사.하륜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세 사람은 당대 최고의 풍수지리가였다. 문제는 궁궐터였다. 계룡산 천도를 반대했던 하륜은 한양의 모악산 일대를 궁궐터로 주장한다. 지금의 서울 연희동 일대다. 그러나 궁궐터로는 작았다. 정도전과 무학은 지금의 경복궁을 궁궐터로 정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이 달랐다.

무학은 인왕산을 축으로 북악과 남산을 좌우 용호로 삼자고 했다. 동쪽을 향해 궁궐을 짓자는 얘기였다.그러나 정도전은 남향이 기본이라 우겼다. 대왕은 남향이 원칙이라 주장했다. 이에 무악이 남쪽을 향할 경우 궁궐에 우환이 계속될거라 했다.

앞에 보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뻗쳐오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정도전은 한강을 방어막으로 제시했다. 관악의 화기는 중간의 한강이 막아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신 관악산의 화기를 보다 안전하게 막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불을 잡아 먹는다는 전설의 동물 해태 석상이 세워진 건 그 때문이다(이상 태조실록).

정치와 집터. 사실 아무런 과학적 연관성은 없다. 그럼에도 연관성을 찾는 것은 아마도 정치의 변화무쌍함 때문일 것이다.실제로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묘한 것들이 있다.

하륜이 궁궐터로 지목했던 명당 연희동 일대를 보자. 한국 현대사에서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다. 전두환.노태우.최규하씨가 그들이다. 연희동엔 全씨 집과 盧씨 집이 길 하나를 두고 이웃해 있고 골목 몇개 지나 서교동엔 崔씨 집이 있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도 정치인에게는 길운을 가져다 주는 곳으로 꼽힌다. 3명의 국무총리를 배출했다. 5공 때의 노신영.김정렬 총리 집이 있다. 두 집 사이의 거리는 직선으로 1백m다. 그곳에서 한 1백m 더 들어가면 YS 때의 황인성 총리 집이 있었다. 세 집 모두 동부이촌동 초입에 모여 있다.

거기서 한 2㎞ 정도 떨어진 곳에 DJ 정권의 실세 권노갑씨도 산다. 통상 그곳도 동부이촌동으로 부르지만 정확히 행정구역상으론 서빙고동이다. 동부이촌동과 선을 긋는 고가다리와 지하터널이 중간에 있다. 그 때문에 지세(地勢)가 끊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됐든 DJ 정권에서 權씨의 말년은 밝지 못했다.

정치인에게 좋은 동네가 있다면 나쁜 동네도 있다고 한다. 유독 그것을 따지는 정치인들이 있다.

김윤환 전 민국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치인은 세검정 일대에 살아선 안된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선 광해군 15년 광해군의 난폭정치에 항거한 이귀.김유가 거사에 성공한 후 피묻은 칼을 이곳에서 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세검정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나 판검사들이 살면 운이 트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지세가 너무 세기 때문에 기가 약한 정치인이 살면 그 기운에 눌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YS 정권의 실세이던 최형우씨가 이 부근에서 살았다.

성산동 낡은 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했다. 崔씨는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집을 점검했다. 그래서 대문의 위치까지 바꾸었다. 그래야 운이 좋다는 충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YS 말엽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을 집터와 연결지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YS 차남 현철씨도 인근에서 살았다.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이는 정 살려면 집앞의 큰 나무라도 베라고 충고했다. 집앞의 큰 나무는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철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역시 고초를 당한 현철씨다. 이회창씨도 1997년 선거를 앞두고 그곳으로 이사왔었다. 낙선 후에 다시 이사했다.

그렇게 풍수를 따졌던 김윤환씨는 서울 서초동에 살았다. 정보사 옆 청구빌라였다. 그곳에서 그는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냈고 한명의 대통령 후보를 창출했다. 그런데 지난해 초 방배동으로 이사를 했다. 사위네 집으로 들어갔던 거다. 그러나 방배동도 정치인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동네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방배동 주민 중 대표적으로 불우한 케이스로 꼽힌다. 어찌됐든 김윤환씨는 그곳으로 이사한 뒤 1년여 만에 중병에 걸려 미국으로 갔다.

정치인의 길흉화복을 집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DJ 정권의 총리요 자민련 총재를 했던 이한동씨를 보자. 서울 상도동에 살던 그는 10여년 전 지금의 염곡동으로 이사했다. 강남대로를 지나 성남 못미친 곳이다. 金모 전의원이 살던 집을 산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집을 찾아가자면 자갈길과 진흙밭을 한참 지나야 했다. 장화를 들고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 먼곳까지 이사 간 이유가 재미있었다. 집터가 왕터라는 이유였다. 소문이 자자했다. 실제로 풍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李전총리에게 여러차례 확인했지만 그때마다 이한동씨는 "떼끼"라는 반응만 보였다. 시인하진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 혹 집터를 믿고 지난 대선에 출마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당시 서울 명륜동1가 현대하이츠 빌라에 살고 있었고, 고향은 잘 알려진 대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의 봉하마을이다.

집터가 사람을 돕는다면 아마 좋은 환경 때문일 것이다. 좋은 환경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환경을 찾고자 한다면 좋은 집터보다 우선으로 찾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거다. 그게 정치가 아닐까 한다.

이연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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