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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가 진짜 사랑한 것은 데이지가 아닌 환상 그 자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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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23면

『위대한 개츠비』를 최소 대여섯 번은 읽은 게 분명하다. 기사 때문에 네 번째로 개츠비를 읽었을 때는 각종 매체에서 하도 많이 인용해서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가 데이지에게 영국제 셔츠를 보여주는 장면의 대사 몇 줄은 외울 정도가 되어 있었다. “너무 슬퍼. 한 번도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거든!”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의 소유자인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니라, 셔츠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내게 그녀가 개츠비가 5년을 기다려 사랑할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단 복선으로 읽힌다. 연애는 그런 면에서 복불복 게임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호르몬의 농간으로 ‘교육, 취향, 안목’이란 이름의 필터는 도무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사랑에 젖고 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외가 쪽은 부유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낸 피츠제럴드는 앨리배마 주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를 만나고, 그녀의 사치벽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데이지가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몰랐던 것은 ‘상류층’ 여성이 어디까지 특별해질 수 있는 지였다. 그녀는 개츠비에게는 아무 미련 없이 자신의 부유한 가족들에게로, 풍족하고 넉넉한 인생으로 돌아가 버렸다”라고 쓸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위대한 개츠비’는 신분의 차이로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야 했던 남자가 이미 결혼한 ‘데이지’를 만나기 위한 집념으로 고생 끝에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개츠비가 롱아일랜드에 있는 그녀의 집 맞은편의 대저택을 사들인 이유도, 매주 요란한 파티를 연 것도 오직 그녀를 ‘다시’만나기 위해서다. 내가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한 번 더’ 읽은 건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개츠비는 정말 위대한가? 이것을 한 편의 연애소설이라고 가정한다면, 한 여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집착을 가진 이 남자가 (내가 보기엔) 위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미명하에 흔히 미화되곤 하는 진부한 감성과는 달랐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 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말대로 희망, 낭만적 인생관 같은 말들은 개츠비를 ‘위대한’사람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이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씨앗이라고도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메시지는 우리가 나쁜 감정이라 치부하는 ‘슬픔’이 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에 대한 통찰이다. 한 남자의 무모할 정도의 ‘낙관적인 희망’은 그러므로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읽힐 수 있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8> 위대한 개츠비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개츠비
개츠비가 바꾸고 싶었던 건 ‘현재’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바꾸고 싶었던 건 ‘과거’였을 것이다. 실제 개츠비는 자신의 과거를 바꾸는데 성공한 경험이 있는데,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그는 거짓말을 통해, 열일곱 짜리 소년이 만들어낼 법한 롱아일랜드의 제이 개츠비란 인물을 창조했다(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리플리』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1920년대 미국의 신흥 부자들은 대개 도박과 주식 투기와 밀주 같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어두운 비밀이 많은 남자다. ‘한 번도 톰을 사랑한 적 없다!’고 선언하지 않는 데이지에게 기꺼이 분노를 표할만큼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를 위해서 다 준비한 건데 그저 도망치고 싶다니! 이 집도 포기하겠대.
제이. 과거를 다시 돌이킬 수는 없어.
아니.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모든 걸 예전처럼 돌려놓을 거야.
사랑이 좌절되기 전의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가능할까? 인간은 통념과 달리 과거를 바꿀 수 있는가?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설계』에서 우리가 가진 고정적 시간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추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순행적인 추적은 잘 정의된 출발점과 진화 과정을 가진 단일한 역사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역사들을 역행적, 즉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추적해야 한다(중략)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론과 인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중략)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한다.”

과거는 현재로 인해 ‘바뀐’다
실종되듯 사라진 연인 때문에 수년간을 고통 받으며 ‘과거’에 일어난 진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현재를 살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소설을 쓰면서 깨달은 건 ‘과거는 절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과거는 바뀐다. 그것은 ‘재발견’되고 ‘재해석’되며 그렇게 ‘재창조’된다. 과거의 파산과 해고, 실연이 현재의 성공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행운이라 믿었던 것은 얼마나 종종 재앙으로 뒤바뀌는가. 우리는 그것을 대개 시간이 만드는 일이라 믿지만, 실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일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환상의 생생함이 ‘데이지’ 이상이 되는 순간이 개츠비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어느새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품은 환상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됐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큰 불도, 그 어떤 생생함도, 한 남자가 자신의 고독한 영혼에 쌓아올린 것에 견줄 수 없다”는 말은 위대한 사랑이 아니라, 현재가 아닌 과거를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질병에 대한 형식 혹은 형태일 수 있다. 이별은 언제나 느닷없다. 중요한 건 이별 뒤 과거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를 어떻게 ‘재창조’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개츠비는 조금도 위대하지 않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어쩌면 신조차 시도하지 않을) 불가능한 ‘과거로의 완벽한 복원’이기 때문이다.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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