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1명, 정치인 제외 … 박 대통령, 절제된 사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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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열린 제35회 청와대 임시 국무회의에서 “이번 특별사면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함으로써 새로운 70년의 성공 역사를 설계하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회의 시작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티타임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절제된 사면’을 택했다. 김현웅 법무장관은 13일 사면을 발표하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절제된 사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사면을 실시했다”고 강조했다. 그 말대로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명단에서 재계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뿐이었고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임시국무회의에서 “이번 사면은 생계형 사면을 위주로 해 다수 서민과 영세업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했고, 당면한 과제인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건설업계·소프트웨어업계 등과, 또 일부 기업인도 사면의 대상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사면을 언급하는 대통령의 강조점이 서민과 영세업자→건설·소프트웨어업계→일부 기업인의 순이었다.

 그 결과 경제인은 최 회장을 포함해 14명이었으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 회장 등 그동안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들이 모두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특사 방침을 밝히고 대상을 물색했으나 대통령이 밝힌 사면 원칙을 충족시키는 인사가 극소수였다”며 “최 회장 외에 다른 인사들을 검토했지만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요건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면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평소 “경제인 사면은 납득할 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해 왔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롯데 사태 등이 불거지고 이미 밝힌 박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원칙이 있는 만큼 재계 총수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작용했고, 법무부 사면심사위도 엄격한 원칙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대신 영세상공인(1158명) 사면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에 대한 대규모 생계형 특별감면(220여만 명)으로 국민 통합과 사기 진작이라는 사면 취지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경제인 사면을 하겠다고 했으면 경제 활성화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특별사면을 법질서 확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면서도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이번 사면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 틀을 바꾼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 크게 배치돼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부패 척결에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하고도 이번 사면에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공정거래를 위반한 건설사와 횡령·배임·분식회계를 저지른 비리 총수까지 포함시켰다”고 지적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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