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희호 방북 날 따로 ‘대북 서신’ … 북한이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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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방북단이 평양으로 출발한 5일 오전, 정부가 고위 당국자 간 남북대화를 제안하는 서신을 북측에 전달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한 뒤 “정부가 전달하려던 서신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측 대남업무기구인 통일전선부 부장을 수신인으로 지정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측은 서신 수령을 거부했다고 정 대변인은 전했다.

 통일부가 이 여사의 방북을 “개인 자격”으로 한정, “이 여사를 통해 전할 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없다”고 수차례 못박은 상태에서 남북 당국 차원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건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관계자들이 방북 기간 중에 이 여사 측에 설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 아태 관계자들은 이를 “여사를 초청한 ‘최고존엄’(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이 여사에 대한 무례”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통일부 정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북측의) 부정적 반응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신 전달 시점을 굳이 5일로 정한 데 대해 정 대변인은 “광복절 이후에 보내는 것도 검토했으나 경원선 (복원) 기공식이 (5일로) 잡혀 있었기에 연동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익명을 전제로 “서신 발송은 한 달 이상 통일부 내에서 고민했던 사안으로 광복절 후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 너무 늦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며 “경원선 복원 행사도 있으니 마침 5일로 정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서신에서 “추석(9월 27일) 계기 이산가족 상봉, 광복 70주년 공동 기념행사 개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북한의 관심사항도 함께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며 “회담 형식, 대표단, 일자, 장소 등은 상호 협의로 정해 나가고, 필요시 사전 접촉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은 오늘(10일) 아침까지도 서한을 수령하지 않았다”며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북측 연락관이 “상부 지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서신 전달을 위한 전화 전통문 접수를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여사 방북을 개인 자격으로 한정한 뒤 정부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한 데 대해 정 대변인은 “지난해 말 이 여사 방북을 위한 실무접촉 과정에서 민간과 통일부가 섞이는 데 대한 북측의 부정적인 반응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여사 측은 방북 이틀째인 지난 6일 정부의 전통문 발송 시도를 아태 관계자에게 전해 들었다고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가 10일 전했다. 그는 “당혹스러웠으며 (정부가)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측은 10일 오후 정부 관계자와 예정된 회의도 취소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이 이 여사 측에 전통문 발송 시도 건을 공개한 데 대해 “남남 갈등을 초래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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