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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만지는 의사의 뇌 건강 챙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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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뇌는 신비의 존재다. 뇌에 생긴 질병은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고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어려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다른 장기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마지막으로 이식술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뇌 이식은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 다루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뇌에 관한 문제가 현대의학이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인 셈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만지고 싶었다. 힘들 줄 알면서도 약 40년 전 신경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사람의 뇌는 몸무게의 2% 정도에 불과하지만 모든 정신적·육체적 활동을 총괄한다. 특히 사람의 뇌에는 영혼이 있다. 육체의 병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뇌를 만져서 치료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신경외과 의사가 된 후 밤낮없이 환자의 뇌와 씨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의과대학 학생 때 가졌던 원대한 포부에 비하면 성과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몸이 치유된 후 마음까지 좋아져 기분 좋게 퇴원하는 환자를 배웅하는 것은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해소제요 즐거움이자 보람이다.

 뇌는 색깔과 굳기가 연한 두부와 흡사하다. 수술 중 자칫 잘못해서 뇌가 으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다. 뇌를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하면서 뇌수술이 5시간이고 10시간이고 계속된다.

 젊은 시절에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수술을 해도 그다지 힘든지 몰랐다. 외래 진료를 하면서 병록지를 보지 않아도 병력을 줄줄 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다. 어느새 큰 수술을 앞둔 날이면 만사 제쳐 두고 일찍 퇴근해서 체력을 아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양재천변을 아내와 함께 매일 저녁 산보한 지 십 수년이 되었다. 눈 내린 겨울에는 빠득빠득 밟히는 눈길이 향수를 자극하고 여름엔 우거진 나무숲이 시원하다. 만개한 벚꽃이 봄날의 밤을 밝히고, 단풍으로 곱게 물든 양재천변 둑의 저녁노을도 마음을 가볍게 한다.

 산책길에 늘 호두 한 쌍을 손에 들고 간다. 걸으면서 오른손 왼손으로 번갈아 가며 단단한 손놀림용 호두를 만지작거린다. 딸깍딸깍 소리가 듣기 나쁘지 않다. 겉모양이 짜글짜글해서 꼭 사람의 뇌를 닮은 호두를 만지다 보면 뇌가 활성화되는 느낌이다. 수술 중 미세한 손 떨림도 확연하게 좋아졌다. 수술 현미경을 통해 정교하게 뇌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에게 손의 안정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걸으며 집사람과 하루 동안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사랑스러운 손주 녀석 부쩍부쩍 커가는 모습에 혈중 엔도르핀이 증가한다.

 뇌를 전공하는 의사이니 뇌 건강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뾰족하진 않지만 뻔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선 과도한 음주나 흡연은 피해야 한다.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다면 이를 관리하는 것이 뇌 건강에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뇌를 좋게 하는 정신운동에 대한 명쾌한 답은 마땅치 않다. 몸이야 육체운동으로 단련할 수 있지만 뇌를 위해 정신운동을 어떻게 할지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 신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준비로 빠듯한 아침 시간이지만 잉크 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소식과 문화를 글로 접하는 것이 즐겁다. 주말에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책을 읽는다. 많은 현대인이 즐기는 인터넷이나 TV는 나름대로 장점과 매력이 있으나 정신 건강에 중요한 상상력과 사고력을 증진시키기엔 다소 부족하다. 단순 정보 획득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논리의 전개 과정을 책이나 신문을 통해 고민해 보는 것이 젊은 사람이나 연세가 든 분 모두에게 뇌를 훈련시키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아니더라도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주말에 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보자. 새로운 책이 부담스러운 어르신이라면 과거 읽었던 책으로 새로운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원한 콩국수라도 말아 먹으면서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 뇌는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