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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임을 롯데 스스로 증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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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고등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사업 성공기를 신문에서 읽고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아마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면서 그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 대해선 애증이 교차했지만 신 회장만큼은 늘 거인으로 남았다. 이제 그 기억을 수정하려 한다.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한국 법에 따라 세워진 기업이라면 한국 기업이다. 그런 점에서 롯데그룹은 한국 기업, 롯데홀딩스는 일본 기업이다. 그런데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라면 얘기는 복잡해진다. 지금의 롯데가 딱 그렇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주장한들 한쪽이 다른 쪽을 좌지우지하는 한 국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논란이 주목을 끄는 건 롯데의 정체성이 정치·사회적 문제를 촉발할 수 있어서다. 이를테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악화되고 일본의 극우적 성향이 한국을 자극할 때 롯데가 자신 있게 한국을 지지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구심이다. 이런 생각의 원인 제공자는 롯데 오너들이다. 일본 롯데가 매출 규모에서 15배인 한국 롯데를 지배하려면 억지로라도 한국을 사랑한다는 징표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신격호 회장의 장남 신동주씨다. 그는 “공부했었는데 일이 바빠 잊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의식에는 이미 한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신씨 일가가 일본 정·재계에 발이 넓은 것도 맘에 걸린다. 롯데에 따르면 신격호 총괄회장은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전범 용의자로 몰리기도 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친분을 쌓았다. 또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 면담했다. 이런 인연이 롯데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신동빈 회장은 올 3월 장남(29)의 결혼식을 조촐하게 치렀는데, 혹 일본 국적의 아들이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부담스러웠던 건 아닌지. 여론에 밀려 취소하긴 했지만 왜 롯데호텔은 지난해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에 장소를 제공했는지. 2011년 4월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일본 롯데는 굳이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를 후원했는지. 모두 단순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의심을 품도록 롯데가 멍석을 깔았다. 혹시 롯데 오너들의 정신은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 말이다. 후대로 갈수록 이런 의심은 더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신동빈 회장의 자녀들은 조부모 네 명 중 세 명이 일본인이다.

이런 의심을 잠재울 길은 한국과 일본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롯데는 한국 기업이다”라면서 일 생길 때마다 일본 주주 달래기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청한다. 더 이상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해선 안 된다고. 한국 매출이 95%에 이르듯 오너들의 정신도 한국에 둬야 한다고.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