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분단의 고착화가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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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분단이 고착화돼 가고 있다. 그것이 현실화될까 봐 두렵다. 올해 1월만 해도 남북 정상들은 정상회담의 희망을 던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전제조건 없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올해 광복 70년·분단 70년을 맞아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되나 싶었다. 하지만 광복절을 불과 12일 남겨둔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자칫 화려한 말잔치로 끝날 수도 있겠다 싶어 걱정이 된다. 남북이 이렇게 된 데는 수십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를 들자면 ‘네가 먼저 양보해라’다. 예를 들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도 임시 중단하겠다”(북한), “핵을 포기하면 경제특구를 도울 수 있다”(한국) 등이다. 순서를 거꾸로 뒤집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핵실험을 중단할 테니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해라”, “경제특구를 도울 테니 핵을 포기해라”.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의 심오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해악”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먼저 행동하기를 바랄 뿐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경우를 경고한 것이다. 남북 정상은 서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분단의 고착화를 향해 100m 달리기를 하는 꼴이 돼 가고 있다.

 한반도가 분단되는 데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미·소 냉전이다. 지금은 미·소 냉전이 끝났고 대신에 미·중 신냉전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이라는 칼을 끄집어내니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라는 칼로 맞서고 있다. 양국은 경쟁적 협력 관계이지만 남중국해 등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고 있다. 이들의 신냉전이 한국으로도 번질까 봐 우려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미국을 방문하면서 “우리에게는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한 말로 한국이 시끄럽다. 이유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듯한 발언이 여당 대표로서 적절했을까다.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쪽은 한·미 동맹이 더 단단해져야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며 칭찬하고 있다. 중국이 아직까지 한국을 대접해 주는 것도 미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중 협력을 중시하는 쪽은 다르다. 지난해 한·중 교역액(한화 351조)이 한·미 교역액(한화 135조)의 두 배를 훨씬 넘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는데 중국에 가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다. 미·중의 협조가 분단의 고착화를 끊는 필수적 요소인데 양쪽으로부터 오해를 사게 됐다.

 이희호 여사가 이번 주에 3박4일 일정으로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한다. 김성재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분과위원장도 동행한다. 자연스럽게 남북 관계의 개선에 대한 얘기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분단의 고착화를 끊을 수 있는 큰 승부를 걸었으면 한다. 지금은 남북한이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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