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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바다 위를 달리는 천상의 드라이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이른 새벽 미시령에 운해가 드리워진 가운데 자동차 한 대가 고개를 넘고 있다.
해질녘 미시령 서쪽의 노을이 장관이다.
모터바이크 동호인들이 미시령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왼쪽) / 미시령 계곡에 있는 도적소 폭포.
설악산의 울산바위는 미시령의 ‘랜드마크’다.
이른 아침 한 바이크족이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

‘슬로 라이프(Slow Life)’ 바람과 함께 옛길이 뜬다. 미시령·대관령·이화령 옛길 등 지금은 시원스레 터널이 뚫려 잊혀진 도로다.

느리고, 건강한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옛길은 ‘성지’가 된다. 이들은 주말이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른다. 여유가 있는 자동차 운전자들도 매연이 가득한 터널 대신 옛길을 이용한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는 것이다.

한때 시간은 돈이었다. “세계의 10년은 우리의 1년”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하고, 초(秒) 단위 경영이 유행어가 됐다. 시공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건 박수를 받았다. 터널을 뚫고, 통신망을 깔았다.

시간은 사람들을 바쁘게 내몰았다. 앞만 보고 사는 고단한 삶이 됐다. 습관은 무섭다. 여유가 생겨도 습관적으로 빠른 길과 지름길을 찾는다.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탓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세태가 변했다. 이제는 ‘천천히’가 대세다.

이른 새벽 미시령 옛길 정상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본 동해와 설악산 자락의 풍경이 장관이다. 속초 앞바다에서 뿌연 안개가 구름이 돼 몰려온다. 울산바위를 휘감으며 밀려오는 운해(雲海)가 미시령 허리춤에 걸쳐진다. 순간 발 아래는 구름바다다. 점점이 머리를 내민 산봉우리가 섬들처럼 봉긋하다.

자전거 한 대가 운해를 뚫고 올라온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구릿빛 허벅지에 건강미가 넘친다. 해가 뜨고, 인제 방향에서 넘어온 자동차가 한 대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아… 천상(天上)의 드라이브다! 미시령은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이들에게 환상의 하늘길이다.

글·사진=주기중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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