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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방대학 이전, 지역에선 생존의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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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용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전 경찰청장

최근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 제한을 위한 범국민 토론회’가 1000여 명의 충북·충남·강원·전남 등 지역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5월 하순에는 14개 시·도지사 및 지역 대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협의체’가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경기도에서는 주민과 행정 당국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 8명이 개정안에 대한 반대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수도권과 다른 지방들 간에 지역 갈등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 퇴색과 학생 모집에 유리한 수도권 지역으로 옮겨 대학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지방대학의 생존본능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례없는 인구·산업·문화·공공기관 등의 수도권 집중현상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갖고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수도권 과밀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2014년 현재 전체 인구의 50%, 100대 기업 본사의 84%, 제조업의 56.9%, 공공기관의 85.9%, 대학생의 38.1%가 집중돼 있다. 수도권 과밀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함께 지방 경제의 침체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2023년까지 대입정원 16만 명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처럼 학생충원율이나 취업률을 중심으로 평가해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면 지방의 군소대학들은 대부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 와중에 2006년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이하 미군공여구역법)’이 제정되면서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방대학들의 경기도 이전·증설이 허용됐다. 그러자 다수의 지방대학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거나 완료한 대학이 청운대(충남 홍성), 경동대(강원도 고성), 예원예술대(전북 임실), 중부대(충남 금산), 을지대(대전시 중구) 등 8개교나 된다고 한다.

 지방대학 입장에서는 국가 전체적인 학령인구의 감소로 대학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이전 추진’이 생존을 위한 문제다. 하지만 대학을 떠나보내는 지방 중소도시 입장에서는 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 내 경제·교육·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전 저지’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최근 충북 제천시에서 벌어진 세명대 이전 반대 서명운동에 14만여 시민 중 8만여 명이 동참했다. 다수의 지역 주민이 생업을 뒤로한 채 상경해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까지 개최한 사실은 대학 이전 문제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심각한 사안임을 보여준다.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대학 하나가 해당 지역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충북 제천의 경우 세명대 학생·교직원 숫자가 전체 인구(14만 명)의 10%에 육박한다.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0%에 이른다. 또 충남 금산의 경우 중부대의 경기도 고양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금산 캠퍼스 주변 원룸 입주자가 4000명에서 2000명으로 줄어 해당 지역 상권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이 각 대학이 생존을 위해 독자적으로 결정하도록 맡겨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헌법 제123조 제2항에는 ‘국가의 지역 균형발전 및 지역 경제 육성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대학 이전으로 인한 지방의 인재양성 기반 붕괴 및 이로 인한 성장동력 상실, 지역 경제 고사, 인구 유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정부에 지워져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대학이 자생력을 갖추고 수도권대학과 함께 균형 있게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든다면 학생 수 감소에 따른 대학정원 조정 문제에 있어서도 학생충원율이나 취업률 등 수도권대학에 유리한 기준만 적용할 것이 아니다. 현재의 정원을 기준으로 수도권과 지방대학의 정원을 균형 있게 감소시켜 지방대학 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종합적인 지방대학 육성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일정한 경쟁력이 있는 지방 중소도시 소재 대학은 성장·발전을 촉진해줘야 한다.

 이와 별개로 현재 지방대학의 수도권 이전을 제한하는 내용의 약칭 ‘미군공여구역법’ 개정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는 이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를 통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헌법상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 격차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수도권 집중현상이 극심한 우리나라에서 지방대학은 해당 지역의 학술·문화적 소외현상을 최소화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 대학과 지역사회 간의 상생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김기용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전 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