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개혁법안은 통과됐지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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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지난 7월 15일 엄격한 긴축조치를 포함하는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이 그리스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좌파 정부의 앞날은 갈수록 불투명하다. 당내 반발이 거세지고 금융시스템은 붕괴직전에 있다. 15일 표결에선 치프라스의 소속 당원 약 40명이 협상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강경 반대파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과 조 콘스탄토풀루 의회 의장이 대표적이다. 치프라스 총리도 그 협상안을 가리켜 ‘가혹한’ 긴축조치가 포함됐다고 시인했다. 그리스 경제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반대파는 판단했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최소 121명의 의원 지지 없이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다. 15일 투표에서 치프라스 총리는 의원 124명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턱걸이로 의회의 표결을 통과했다. 따라서 향후 몇 달 사이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신의 권한을 확고히 하거나 연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다.

유권자들이 정부를 재신임할지는 불확실하다. 15일 의회 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밖에선 항의집회가 폭력시위로 비화하면서 아테네 정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유럽 채권단과 치프라스 총리가 합의한 협상안은 7월 초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유권자들이 거부했던 것 말고도 더 많은 긴축조치를 포함한다.

구제금융을 둘러싼 그리스 의회 내의 논쟁은 입법부 내의 극심한 분열상을 드러냈다. 한 우파 의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발언 도중 찢어버렸다. 치프라스 총리가 협상 지지 발언을 하는 동안 의원들이 야유를 보냈다. 게다가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은 구제금융안을 “새로운 바르세유 조약”이라고 평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강요된 강화조약을 일컫는 말이다.

단기적으로는 치프라스 총리의 내각 개편이 예상된다. 의회 의석을 포기하는 이탈자를 교체하고 야당의 지원에 기대 자신의 아젠다를 추진해 나갈 듯하다. 14일 오전 브리핑에서 정부 당국자들은 치프라스 총리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또한 내부 분열에 관한 걱정보다 구제금융을 마무리 짓는 일이 우선과제라고 16일 오전 가디언에 말했다.

협상안이 그리스 의회를 통과했다는 뉴스에 아시아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전장의 주요 지표가 모두 오름세를 보였다. 그러나 유럽의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상당수 은행의 금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 라는 우려 속에 그리스 은행들은 20일에야 문을 열기로 했다. 자본통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7월 15일 유럽집행위원회는 유럽재정안정기금에서 70억 유로의 긴급자금을 그리스에 제공해 금융시스템을 떠받쳐야 한다고 제안했다(유럽중앙은행이 지난 16일 긴급유동성 지원규모를 1주간 9억유로 늘리기로 했다). 영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긴급자금으로 그리스에 단기융자를 제공하는 데 반대했다(아이리시 타임스 보도).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유로화를 떠받치려는 노력으로 인한 금융채무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다른 여러 EU 회원국들의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합의안이 공식 승인된다.

마크 한라한 아이비타임스 기자

[박스기사] 믿습니다, 메르켈 총리 - IMF와 이웃나라들의 비판이 거세도 독일인의 지지는 흔들림 없다

유럽연합(EU)의 이웃나라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리스에 제시한 엄격한 긴축안을 강력히 비판했다. 하지만 대다수 독일인은 그 방안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지난 7월 15일 밤 아테네에서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의 폭동이 시작됐다. 그들은 구제금융이 자신들의 삶과 융자상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반면 독일인은 그리스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고 말했다.

“대단히 실망스럽다. 독일의 역할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듯하다”고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독일인 카롤린 폰 린싱겐(35)이 말했다. 그는 그리스가 부자 과세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계속되는 위기의 원인으로 그리스 정부 내의 구조개혁 부재를 지목했다.

지난 14일 유출된 보고서 1건이 로이터 통신에 공개되면서 EU 지도자들에게 충격을 던져줬다. 구제금융안에 대규모의 부채탕감이 포함되지 않을 경우 IMF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IMF는 그리스에 30일의 상환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채무 부담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고려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상당한 규모의 부채탕감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대다수 독일인은 그리스에 부채탕감을 고려하는 방안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독일은 그리스에 융자를 제공하는 유럽 최대 채권국이다. 이번에 구제금융으로 제공되는 960억 달러의 큰 부분을 떠맡게 된다.

“진보주의를 펼칠 때가 있고 보수주의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뮌헨 출신의 여행 가이드인 오스본 패트릭 켐프(43)가 말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독일은 내부 긴축과 제한적인 지출을 통해 유럽 최대 경제로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들이 독일 부채의 절반을 면제해줬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켐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채탕감의 요소가 있었다 해도 독일인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는 또한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사람 중 과반수가 지금은 생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채탕감의 역사에 관해 모르는 세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높은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삶이 어떤지는 안다.”

슈투트가르트의 음식점 주인 세바스티안 루드비히(47)는 그리스의 부채 위기에 대해 남 탓을 하려거든 베를린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너무 독일에만 시선이 집중돼 있다. 독일 말고도 그리스를 이처럼 가혹하게 몰아 부치는 나라들이 있다. 핀란드 같은 나라”라고 루드비히가 덧붙였다. “독일이 총대를 맸을 뿐 책임을 혼자 떠안아선 안 된다.”

독일 의회는 17일 새 구제 금융안을 통과시켰다. 대규모 예산감축, 연금 삭감, 그리고 그리스 고대 예술과 공예품 매각 등 예전의 구제금융보다 더 강력한 긴축조치를 포함하는 방안이다.

“독일이 악역을 맡았다. 하지만 많은 유럽국가가 독일과 같은 입장을 보인다”고 베를린의 작은 출판사 사장인 아담 헬무트(41)가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부채탕감이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라고 보지만 대다수 독일인은 메르켈을 지지한다고 관측했다. 그리고 메르켈 총리는 “국민여론을 절대 거역하지 않는” 지도자라고 평했다.

제스 맥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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