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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창조경제혁신센터 ‘정권 사업’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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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정부의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이 모두 문을 열었다. 지난 22일 인천혁신센터 개소식을 마지막으로 10개월의 대장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세종시를 포함한 17개 시·도를 대기업들이 각각 맡아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창업·벤처와 중소기업 성장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허브’다. 박 대통령이 17개 중 15곳의 개소식에 참석할 만큼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일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혁신센터를 설립한 대기업 회장들과 만난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업의 높은 호응이 시너지를 내면 창업 국가의 틀을 닦는 데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다. 잘 만 하면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17개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혁신센터 출범 과정에서 불거진 기계적인 지역 배분, 대기업 할당제 등 태생적 한계를 이겨내야 한다. 지난해 9월 대구(삼성)를 시작으로 출범한 혁신센터는 대전(SK), 광주(현대차), 충북(LG), 부산(롯데) 등 하나같이 정부가 대기업에 연고 지역을 할당한 모양새다. 정부가 작전하듯 밀어붙이는 것은 창조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개소식에 맞춰 대기업이 장밋빛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격려하는 모습이 되풀이되다 보니 혁신센터가 전시행정에 그치고 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대기업 형편과 사정에 따라 스스로 지역 특성에 맞춰 투자 계획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번듯한 창업 인프라를 놓는 것만으론 안 된다.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창업은 돈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창업을 부추기고 성공을 받쳐주는 문화와 제도가 더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처럼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소한 규제로 발목 잡고 기업의 성과를 갉아먹는 낡은 틀을 놔둔 채로는 성공할 수 없다.

 혁신센터를 창업 생태계의 용광로로 만들겠다는 각오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간 따로 놀았던 창업 지원과 금융 지원부터 융합해야 한다. 창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장애물과 규제, 애로 사항을 원샷에 처리하는 창업 전진기지화하는 것이다. 강력한 정부 주도로 성공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 모델을 참조할 필요도 있다. 중관춘의 성공은 교육과 연구개발(R&D)을 한 곳에 몰아 인재가 몰리도록 한 데다 규제 철폐와 세제 지원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 게 비결이다.

 이 정권에서 꼭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도 버려야 한다. 혁신센터를 이 정부의 전유물로 여겨서도 안 된다. 그간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부 정책이 찬밥 신세가 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하려는 발상을 버리고 창업센터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가 합심해 성공 창업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