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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개성·신의주·나진, 세계 물류 통로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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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먼 옛날부터 흐름이 왕성하면 나라가 부강했다. 당나라와 로마제국이 그랬고, 청해진을 건설했던 장보고의 해상왕국이 그랬다. 반면 세계적 흐름을 도외시한 채 나라의 빗장문을 걸어 잠근 조선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동량, 즉 물자의 흐름이 매우 중요한 나라다. 자원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외국에서 물자를 들여와 가공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하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요 수출품인 선박·자동차·정보기술(IT) 등이 물자유통과 인적유통을 돕고, 정보의 흐름을 원활히 해주는 도구란 점도 매우 흥미롭다. 흐름을 스스로 창조하고 다스렸기에 유라시아대륙의 가장 동쪽 끝 작은 나라, 한국은 오늘날 세계 10대 무역국을 일궈냈다.

 올해 우린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북한이 세계경제의 도도한 흐름을 철저히 도외시하고, 국경을 걸어 잠근 채 지내온 세월이 70년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쿠바가 지난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통해 국제무대로 나왔고, 최근엔 이란마저 핵협상을 타결하고 경제제재가 풀리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취임하면서 ‘이란·쿠바·북한 등 적과도 손 잡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세 나라 중 현재 북한만이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을 여는 방안 중 하나가 바로 거대한 세계 물류의 흐름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개성을 통해 남으로부터 물류의 흐름을 받고, 단둥과 신의주를 통해 서북의 흐름을 흡수하고, 나진을 통해 동북의 물류를 연다면 북한경제도 거대한 흐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의 경제협력은 남북 화해에 진전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북한 주민의 경제적 삶의 질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천재적인 무역 수완을 발휘해 베이징 상인의 조선인삼 불매동맹을 깨뜨리고, 막대한 돈을 벌어서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했다. 후대손손 그의 이름이 기억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북쪽의 국경지대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반도 주변 여러 국가는 동북아지역을 더욱 공고한 경제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접경한 동북 3성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도 극동 연해주 발전에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으로 낙후된 아시아지역의 개발을 촉진하는 대규모 플랜도 곧 가동될 것이다.

 인적·물적 흐름이 자유로워지면 동북아지역은 빈곤과 갈등에서 벗어나 번영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동북 3성의 물자가 함경북도를 통과하여 동해로 나오고, 시베리아산 석탄·원유가 북한을 통해 세계로 퍼지는 일이 헛된 꿈만은 아니다. 빗장을 걸어 잠근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는 것은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번영을 이루는데 전략적 가치가 상당하다.

 ‘AH1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 경부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으로,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를 뜻한다. 아시아 32개국을 횡단하는 총 14만㎞의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할 물류 흐름의 대동맥인 셈이다. 이 길은 불행히도 휴전선 철조망에 의해 흐름이 막혀있다. 한반도를 대륙으로 확장하고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선 이처럼 북한을 협력의 장으로 불러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난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광활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대륙까지 장장 1만4100㎞의 대장정에 나선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시작됐다.

비록 이번 출발점은 러시아땅이지만, 머지않아 서울역이나 부산항에서 유라시아 특급열차가 출발을 알리는 힘찬 기적소리를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70년전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 해방된 나라의 앞날을 함께 노래할 때 남과 북은 하나였다. 이제 북녘땅의 위아래 빗장을 모두 활짝 열어 젖히고, 그날의 우렁찬 함성소리를 다시 한번 한반도 방방곡곡 울려 퍼지도록 해보자. 마침 8월 15일 광복절도 곧 다가오지 않는가.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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