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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도라 하나 썼을 뿐인데 … 와우! 영화배우 같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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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멋쟁이들에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계절이다. 멋을 내려면 뭔가 걸쳐야 하는데,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걸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지와 티셔츠, 단조로운 옷차림의 연속이다. 스카프는 물론 목걸이·팔찌도 땀으로 인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아무리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날씨엔 ‘무더위에 장사 없다’며 손을 내두를 것 같다. 무엇으로 멋을 내야 할까. 해답은 ‘모자’에 있다. 여름철 액세서리로 각광받고 있는 모자에 대해 알아봤다.

스트로·라피아 등 자연소재로 만든 모자가 여름철 대표 액세서리로 떠올랐다. 사진은 ‘바나나 리퍼블릭’(왼쪽)과 ‘헬렌 카민스키’의 페도라를 착용한 모습.

이탈리아 피렌체의 고성(古城) 포르테자 다 바소. 이곳에선 일 년에 두 번,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진다. 바로 ‘피티 우오모’(Pitti Uomo)다. 매년 1월과 6월에 열리는 피티 우오모는 세계적인 남성복 패션 박람회로 나이와 국적을 불문한 멋쟁이들이 모여 자신만의 패션 감각을 뽐내는 행사다. 1972년부터 시작해 올해 88회를 맞이한 이 축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이 바로 모자다. 지난달 열린 88번째 피티 우오모에서도 모자를 이용해 개성을 드러낸 멋쟁이 신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분홍색 셔츠와 슬랙스(느슨하고 헐렁한 바지)를 입고 챙이 넓은 흰색 페도라로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한 30대 남성부터 갈색 체크무늬 수트에 베이지색 헌팅캡(사냥할 때 착용하는 챙이 짧고 둥글넓적한 모자)을 쓴 중년 신사까지, 멋쟁이들의 머리 위엔 어김없이 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찾아온 모자의 시대

피티우오모의 참가자들이 중앙일보 스타일 분야 디지털 뉴스채널 ‘올스타일코리아(vingle.net/
AllStyleKorea)’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모자는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패션 아이템이다. 오래전부터 보온·안전·직위 상징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홍익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간호섭 교수는 “서양에선 모자를 쓰는 문화가 60년대까지 이어졌다. 30년대 귀족은 물론 50년대 갱스터까지, 모자를 써야 옷차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자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의관정제(衣冠整齊)’라고 해서 정숙한 옷차림엔 모자가 필수였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최근 들어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모자는 ‘너무 과한’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됐다. ‘야구모자’라 불리는 챙이 달린 운동모자 외에 다른 형태의 모자를 쓰는 것을 억지로 멋을 낸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다양한 모자들이 길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도라다.

페도라는 일명 ‘중절모’라 불리는, 챙이 위로 말린 펠트 모자를 말한다. 요즘에는 디자인과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중절모’보다 ‘중절모 느낌을 살린 모자’ 정도로 통용되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페도라가 국내에서 남녀노소의 패션 아이템이 된 건 2011년 이후로 파악된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2011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전통적인 중절모 스타일의 페도라를 착용한 여성 모델을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페도라를 쓰는 여성은 흔치 않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길거리에선 독특한 디자인의 페도라를 쓰고 있는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모자 전문 브랜드 ‘헬렌 카민스키’의 김은혜 MD는 “3~4년 전에는 모자의 종류가 비니(니트 모자)와 운동모자, 두 가지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엔 남녀 통틀어 페도라를 찾는 고객이 가장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과감한 디자인이었던 스냅백(챙이 평평한 운동모자)은 이젠 흔한 패션 아이템이 됐다. 액세서리의 트렌드가 가방·구두에서 모자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여름 필수 아이템, 파나마 해트와 보터 해트

1. 라피아 소재의 굵은 짜임이 돋보이는 헬렌 카민스키의 바이저

2 화려한 자수로 꾸민 브라운 햇의 헌팅캡

3 헬렌 카민스키가 선보인 트릴비

4 크라운과 챙이 모두 평평한 보터 해트. 브라운 햇 제품

5 리타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흰색 파나마 해트를 내놨다.

페도라가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모자가 쏟아져 나왔다. 크라운(모자의 머리 부분)이 평평한 ‘포크파이’, 뒷부분의 챙이 말려 올라간 형태의 ‘트릴비’, 크라운이 공처럼 둥글게 생긴 ‘보울러’ 등이 페도라의 한 종류로 인식되며 골고루 인기를 얻었다. “페도라를 종류별로 모두 갖고 있다”는 직장인 김성재(34)씨는 “같은 옷이라고 해도 어떤 페도라를 쓰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통적인 모양의 페도라를 쓰면 남성성이 두드러지고, 트릴비나 포크파이를 쓰면 가볍고 캐주얼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페도라 중에서도 여름에 많이 찾는 것은 자연소재를 활용해 시원한 느낌을 살린 스트로 해트(straw hat), 즉 밀짚모자다. 매년 여름이면 스트로나 라피아(raphia·야자과의 상록수) 등으로 만든 모자가 인기인데, 올해는 그 중에서도 파나마 해트(panama hat)와 보터 해트(boater hat), 두 가지가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파나마 해트는 ‘밀짚으로 만든 중절모’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에콰도르·콜롬비아 등 중남미 지역에서 자라는 야자류인 ‘토퀼라’라는 식물로 만든 섬유를 손으로 짜서 만든다. 파나마 지역에서 많이 착용하고, 파나마 항구에서 수출이 시작돼 ‘파나마 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국내에선 통용되는 정의가 조금 달라졌다. 모자 디자이너인 브라운 햇의 박지향 대표는 “파나마 지역에서 쓰는 페도라 스타일의 모자를 파나마 해트라고 부르는데, 현재 한국에선 ‘자연소재로 만든, 흰색의 중절모’로 통한다. 원래 파나마 해트는 챙의 길이나 색상이 다양한데, 이번 시즌에 워낙 흰색 밀짚 중절모의 인기가 높아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터 해트 역시 남녀 모두에게 인기다. 보터는 ‘보트에 탄 사람’이란 뜻으로, 크라운과 챙이 모두 평평한 페도라를 의미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리어 등 배를 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즐겨 쓰던 모자다.

파마나 해트와 보터 해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외 브랜드들은 두 가지를 주력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인 브라운 햇은 챙의 끝 부분을 마감하지 않고 스트로 소재의 결을 살린 보터 해트를 선보였다. 흔히 ‘썬캡’이라 불리는 바이저(visor)를 고급 스트로 소재로 만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헬렌 카민스키는 이번 시즌, 스트로의 굵은 짜임이 돋보이는 ‘타시’를 출시, 좀 더 독특한 모자 스타일을 제안했다. 박지향 대표는 “요즘엔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모자를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며 “주로 헌팅캡을 사용하던 50, 60대 중년 남성 고객들이 요즘엔 ‘헌팅캡은 나이 들어 보여서 싫다’며 다른 형태의 모자를 찾는다. 오히려 여성 고객들 사이에서 헌팅캡이 인기다. 또 파나마 해트는 남녀 모두 선호한다. 최근의 패션 트렌드인 ‘젠더리스(genderless)’가 모자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런 경향은 내년까지 지속될 듯 하다”고 전망했다.

글=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정종민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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