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어릴 적 술밥 먹고 싶어 어머니께 배운 궁중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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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향온주’ 무형문화재 박현숙씨

매주 ‘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는 江南通新 로고를 새긴 예쁜 빨간색 에코백을 드립니다. 지면에 등장하고 싶은 독자는 gangnam@joongang.co.kr로 연락주십시오.

술은 맑았다. 향은 깊었고 그 향만으로 콧속이 아렸다. 뜨거운 게 혀를 돌아 목으로 타 넘어갔다.

 지난 14일 종로구의 서울시 무형문화재 교육전시관에서 주조가 박현숙(64·풍납동)씨가 건네 맛본 서울 전통주 ‘향온주’의 맛은 그랬다. 이 술은 알코올 40도 증류식 소주다. 녹두 누룩으로 빚었다. 빚은 지 6개월이 지나야 술이 완성된다. 조선시대 때는 궁중에서 마셨다 한다.

 “높은 도수에 비해 가볍고 산뜻하죠. 취기가 올라도 금방 사라져요.”

 박씨는 서울 무형문화재 9호다. 술 빚는 건 어머니에게 배웠다. 하동 정씨 가문인 어머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술이다. “그저 김치찌개, 된장찌개 배우듯 어린 시절 술 담글 때 짓는 술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가 술 빚으시는 걸 항상 옆에서 봤죠. 그래서 알게 됐어요.” 그는 술을 못한다. “맛과 향을 알 뿐”이다. 술을 몇 잔 마시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 “술 잘하는 사람이 술 공장 하면 망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하하하.”

 집안에서만 내려오던 술이 서울 전통주 자리에 오르게 된 계기는 서울시가 1994년 서울 정도 600년을 맞아 전통주 찾기에 나서면서였다. 전문가들은 고증을 거쳐 녹두로 빚은 향온주가 하동 정씨 가문의 술이라고 결론 내렸다. 궁중술인 향온주 만드는 방법이 하동 정씨 가문으로 전해졌다는 거다.

 그는 현재 교육 전시관에서 향온주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한 번 수업에 재료비 5000원만 내면 된다. 1년 동안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풍납2동 주민센터에서는 ‘장 담그기 체험’ 수업도 한다.

 무형문화재가 된 후 그는 10여 년간 술의 재료인 누룩에 대해 연구했다. 밀, 쌀, 수수, 조 껍질, 검은색 누룩인 까마귀 누룩까지 총 12가지 종류로 누룩을 만들어 봤다. 시행착오는 많았다. 만드는 방법을 정확하게 표준화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순수하게 녹두로만 만들어진 누룩으로 향온주를 빚게 됐어요. 앞으로 여러 가지 누룩을 이용해 술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이 술은 우리 거잖아요. 우리가 지켜가야죠.”

만난 사람=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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