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커 드림 꿈꾸는 아프리카의 '드록바'들의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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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제공하고 매월 200달러 월급을 지불하겠다는 계약서

유연성과 탄력에 힘까지 갖췄다. 피지컬은 압도적이다. 유럽리그에서 점점 더 늘어나는 아프리카계 선수 이야기다. 나이지리아의 영웅 은완코 카누부터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록바, 야야 투레까지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갖춘 아프리카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21일(현지시간) 어린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을 집중 탐사 보도했다. 싸커 드림을 안고 아시아 유소년팀으로 넘어온 이들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강제로 축구(노동)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후 아시아로 팔려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축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라오스 축구리그에서 팍세를 연고로하는 참파삭 유나이티드 케이스다.

이 팀에는 현재 23살 이하의 아프리카 선수 6명이 있다. 지난 2월 서아프리카에서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축구아카데미로 온 이들이다. 신생팀인 참파삭이 아프리카 유소년 선수들을 데려온 건 이들을 키워 장래에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다. 참파삭은 선수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14~15살밖에 안된 선수들을 1군 경기에 내보냈다.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선수들

BBC는 라이베리아에서 온 케셀리 카마라가 14살밖에 안된 선수라며 팀이 그에게 6년간의 장기 계약을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계약서에 따르면 카마라는 200달러의 월급과 숙소를 제공받아야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잠은 경기장의 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잤다. 그는 “창문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30명이 넘게 자야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라오스 같은 아시아 국가로 향하는 이유는 아프리카에 축구 아카데미 같은 유소년 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조지 웨아(1995)가 만들어 준 유소년 시설이 유일하게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결국 싼값에 축구를 배우기 위해 라오스를 비롯한 아시아로 향하지만 동남아의 유소년 시설도 대부분 법적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시설이다.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측은 샴파삭 측에 대해 불법 계약을 취소하라는 압박을 했고 결국 아프리카에서 싸커드림을 안고온 17명은 2달 전 계약을 해지했다. 하지만 6명은 참파삭에 남는 길을 택했다. 가나 출신 16세 선수 한 명과 라이베리아 출신 선수 5명이다.

BBC는 이들도 불공정한 계약과 열악한 환경에 불만이 있지만 비자 만료시 갱신을 위해 불만을 표출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구단 측이 비자 승인 여부를 쥐고 있어서다. 축구선수로 워크퍼밋(노동허가)을 받아야 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유소년 시설이라 워크퍼밋 발급도 불가능하다. 아프리카로 돌아온 한 선수는 라오스 축구 아카데미에서의 시간을 “노예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비정부기구인 ‘문화축구연대(CFS)’는 서부 아프리카에서 매년 1만 5000명의 10대 축구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추정했다. 대부분은 불법이다. FIFPro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라오스 축구연맹을 처벌해 주길 요청한 상태다. FIFA는 18살이 될 때까지 선수의 해외 클럽 이적이나 아카데미 등록을 막고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BBC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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