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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바람의 연주자 톰 왓슨, 스윌컨 다리에서도 울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차가웠다. 한여름이지만 코가 얼얼할 정도로 추었다. 골프 성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는 위도가 모스크바 보다 높다. 북해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한 순간에 겨울이 되기도 한다. 선수들은 겨울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렀다.

그 추위 속에서도 갤러리들은 오후 10시가 다 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들을 버티게 한 건 그랜드 슬램을 노리는 조던 스피스도, 황제의 부활을 노리는 타이거 우즈도 아니었다. 66세의 노장 톰 왓슨이었다.
디 오픈 2라운드가 벌어진 18일(현지시간)은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일상사인 올드코스에 경기가 3시간 지연될 정도로 엄청난 비였다. 컷 통과가 어려워 마지막 라운드가 될 톰 왓슨의 경기 시간은 오후 5시로 미뤄졌다. 오후 9시30분이 넘어 어둠이 몰려올 때 그들은 17번 홀에 있었다. 경기를 끝내야 했다. 다른 조는 다 코스를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조에서 경기하던 선수들은 “지금 경기를 중단하면 내일 새벽 마지막 홀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 것은 떠나는 전설 왓슨을 보내는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땅거미를 뚫고 경기를 했다.
왓슨은 가장 뛰어난 악천후 선수다. 링크스(영국 해안가의 골프장)에서 비와 바람을 연주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궂은 날씨의 디 오픈에서 5차례나 우승한 이유도 그래서다.

링크스의 불확실성 극복이 골프

그러나 그는 처음엔 링크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악천후와 울퉁불퉁한 땅 때문에 잘 친 샷이 벙커에 빠지는 등 나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강직한 사람이다. 운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함을 원했다. 링크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왓슨은 골프를 사랑했지만 링크스를 미워했다. 왓슨은 어느 날 스코틀랜드 북부의 도노크라는 골프장에서 지인의 권유로 폭우 속에서 경기를 했다. 퍼붓는 비를 맞으면서 왓슨은 자연의 위대함을, 링크스의 불확실성을, 나쁜 운도 극복해야 하는 골프의 지혜를 알게 됐다. 골프가, 아니 인생이 정복할 수 없는 게임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링크스를 가장 사랑하는 골퍼가 됐고 현재 살아 있는 골프 선수 중 디 오픈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전설이 됐다.
젊은 시절 그의 별명은 허클베리 딜린저(Huckleberry Dillinger)였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에 주근깨가 많고 앞니 틈이 약간 벌어진 그의 모습이 허클베리 핀을 닮았기 때문이다. 또 결정적 순간이 되면 그의 표정은 킬러처럼 날카로워지고 코스 전략은 매우 치밀했다. 미국 언론은 지난 세기 초반 은행은 물론 경찰서까지 털고 두 차례 탈옥에도 성공한 전설적인 살인강도 존 딜린저를 대입시켰다. 모순된 두 얼굴을 가진 주인공이 왓슨이었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몇몇 갤러리들이 톰 왓슨의 얼굴 가면을 쓰고 나와 그를 응원했다. 왓슨은 “그 마스크들 징그럽다. 내 얼굴에 그렇게 주름이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흘렀다. 아직도 허클베리 핀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 66세인데도 존 딜린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승부사다. 지난해 라이더컵에서 그는 미국 캡틴으로 나섰다. 21세기 들어 유럽에 일방적으로 패하고 있는 미국은 적지에서 팀을 승리하게 한 맹장 톰 왓슨에게 팀을 다시 부탁했다. 그는 구식이었다. 저돌적으로 나가 싸우기를 원했다.

"굉장한 추억 만들었고 행복했다"

대회 중 선수들은 모조 라이더컵에 사인을 해 왓슨에게 선물했다. 왓슨은 “이런 거 필요 없다. 진짜 라이더컵을 가져오라”고 일갈했다. 필 미켈슨 등이 그의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은 유럽에 졌다.
올드 코스에서 스윌컨 개울은 매우 중요한 의미다. 1번 홀과 18번 홀은 축구장처럼 광활한 대지다. 스윌컨 개울 건너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황무지 비슷하다. 전혀 다른 세계다. 세상과 성지, 현실과 이상,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가 이 스윌컨 개울이다. 잭 니클러스나 아널드 파머 등이 디 오픈에서 은퇴경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스윌컨 다리를 건널 때 눈물을 흘렸다. 골프라는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왓슨은 울지 않았다.
스윌컨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즐거움 밖에 없다"고 했다. 행복해 보였다.
왓슨에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09년 디 오픈에서 거의 우승할 뻔했다. 마지막 홀에서 1타 차 선두였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어프로치샷이 그린을 맞고 튕겨 나가면서 보기를 했고 연장 끝에 졌다. 그와 링크스와의 애틋한 관계를 감안하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왓슨은 슬퍼하는 기자들에게 “장례식도 아닌데”라면서 웃으면서 떠났다. 그는 골프가, 아니 인생이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왓슨은 골프 성지 올드 코스에서는 우승을 못했다. 최고의 링크스 플레이어는 올드 코스에서 우승을 못했다.
톰 왓슨이 스윌컨 다리를 건너자 마침 돌풍이 불고 빗방울도 떨어졌다. 올드 코스가 최고의 링크스 플레이어, 최고의 악천후 플레이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하고 총 12오버파로 최하위에 그쳤지만 그는 이겼다. 인생을 이해했고 링크스에서 행복하게 지냈다.
올드 코스 18번 홀의 이름은 톰 모리스다. 톰 모리스는 1800년대 올드 코스의 그린 키퍼를 하면서 디 오픈에서 3번 우승한 세인트 앤드루스의 영혼 같은 존재다. 18번 홀 옆에는 그가 클럽을 만들었던 공방이 있다. 지금도 ‘톰 모리스’라는 기념품 가게로 남아 있으며 아직도 그의 후손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왓슨은 세인트 앤드루스에 올 때면 가끔 올드 톰의 무덤을 찾는다. 올드 코스의 톰 모리스의 영혼이 또 다른 톰을 보고 있는 듯도 했다. 그는 미디어 센터로 들어와 인터뷰를 했다. "굉장한 추억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웃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한편 디 오픈 3회 등 메이저 6승의 닉 팔도(58)도 이날 디 오픈과 안녕을 고했다.

세인트 앤드루스=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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