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애인, 때론 아내 같은 퍼터…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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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백 속에 꽂혀 있는 14개의 클럽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드라이버, 7번 아이언, 웨지, 퍼터…. 정답은 물론 없다. 누구나 자기가 가장 아끼거나 자신감을 갖게 하는 클럽이 있게 마련이다.

많은 프로 골퍼들은 퍼터를 제일 아낀다고 말한다. 퍼터야 말로 애증이 듬뿍 얽혀 있는 클럽이다. 퍼터를 아내나 애인에 비유하는 사람도 많다. 가장 소중한 존재인 동시에 때로는 가슴을 아프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퍼터를 찾는 여정이다”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까.

2012년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김인경(27)은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30cm도 안 되는 거리의 퍼트를 놓치면서 메이저 챔피언 자리를 유선영(29)에게 넘겨주고 만다. 지난 13일 끝난 US여자오픈에선 먼 거리 퍼트를 쏙쏙 성공시킨 전인지(21)가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줄곧 선두를 달리던 양희영(26)은 마지막 18번 홀에서 3m 거리의 오르막 퍼트를 놓치면서 다 잡았던 우승을 놓쳤다. 퍼트에 얽힌 일화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장황하게 서론을 늘어놓는 이유는 이번 주부터 퍼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한 방은 결국 퍼터의 몫이다. 14개의 클럽 가운데 가장 짧지만(롱퍼터를 제외하곤), 가장 중요한 장비가 퍼터다. 골퍼들이 가장 자주 교체하는 클럽이기도 하다. 값이 상대적으로 싼 이유도 있지만 스코어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골프 초창기인 16세기엔 나무 클럽을 사용했다. 헤드 역시 스틸이 아닌 나무를 썼다. 퍼터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엔 ‘퍼터’가 아니라 ‘퍼팅 크릭(cleek)’으로 불렸다. 크릭은 직역하자면 갈고랑이라는 뜻인데 골프에선 로프트가 제일 작은 클럽을 뜻했다. 퍼터 샤프트는 주로 물푸레나무나 개암나무로 만들었고, 헤드는 너도밤나무를 많이 썼다.

퍼터 헤드 재질은 골프공 재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골프 초창기인 1618년 당시엔 페더리 골프공을 사용했다. 거위 털로 만든 공을 가죽으로 둘러싼 제품이었는데 이 공은 내구성이 약해 퍼터의 재질은 여전히 나무였다. 쇠로 헤드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공을 보호하기 위해 퍼터 헤드도 나무로 만든 것이다.

1848년엔 구타 페르차(gutta percha) 골프공이 등장한다. 적도 부근에서 나오는 고무를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내구성이 뛰어났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 구타 페르차 골프공의 등장은 클럽 헤드의 재질을 변화시켰다. 클럽 전체를 나무로 만든 클럽은 점차 사라지고 헤드를 스틸(쇠)로 제작하는 게 유행이 됐다. 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히코리 나무 샤프트에 스틸 헤드를 장착하고, 그립은 양가죽으로 제작한 퍼터가 19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최신 퍼터였다.

골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터는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미국)가 사용했던 ‘컬래머티 제인(Calamity Jane)’이다. 존스가 1930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때 사용했다. 컬래머티 제인은 미국의 변경을 개척했던 여성의 이름이다. 승마에 능숙한 여장부였는데 존스는 그의 퍼터에 이 이름을 붙여 메이저 13승을 거뒀다. 컬래머티 제인의 길이는 33과 2분의 1인치, 구스 넥(goose neck)디자인에 로프트 8도짜리였다.

컬래머티 제인은 존스가 애지중지했는데 나중에는 닳아서 못쓰게 되자 스폴딩(Spalding)사가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줬다. 이 퍼터는 미국 뉴저지주 미국골프협회(USGA) 골프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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