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계정 적힌 파일, 국정원 업무문서로 볼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법원이 16일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반전을 거듭하게 됐다. 대법원은 핵심 쟁점이었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심이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인함에 따라 향후 재판에서 1심과 같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로 나온 이날 대법원 판결을 요약하면 “법률 적용의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부터 다시 정리하라”는 취지다. 대법원이 문제가 있다고 본 대상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인 김모씨의 e메일 계정에서 압수한 ‘425지논’ ‘시큐리티’라는 제목의 문서 파일이었다. 두 파일은 원심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유죄로 판단하게 한 핵심 증거였다.

 앞서 원심인 서울고법 재판부는 두 파일에 기재된 269개의 트위터 계정 등을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심리전단이 활용한 것으로 인정된 트위터 계정은 1심 175개에서 2심 716개로 대폭 늘어났다. 고법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여당 대선후보가 확정된 다음 날인 2012년 8월 21일을 기점으로 심리전단이 작성한 선거 관련 글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봤다. 이 같은 판단은 “댓글 활동은 심리전단이 평소 해오던 활동으로서 선거운동으로 전환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뒤집는 배경이 됐다. 고법 재판부는 “27만 건의 댓글 중 13만6017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고 제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파일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상 일정한 내용이 적힌 문서나 문서 파일을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문서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 그 내용을 자신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거나(제313조 제1항), 상업장부나 항해일지처럼 업무상 기계적으로 작성된 문서여서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업무상 통상문서’에 해당해야 한다(제315조 제2호).

 김씨가 법정에서 문서 작성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제313 제1항을 근거로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데는 원심과 대법원의 의견이 같았다. 그러나 제315조 제2호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판단이 갈렸다. 원심은 해당 파일이 ▶정황상 김씨가 작성한 것이 분명하고 ▶장기간 계속적으로 내용을 추가·변경했으며 ▶내용 중에 댓글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점 등을 들어 ‘업무상 통상문서’라고 인정했다. 반면 대법원은 “내용 중에 김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여행·상품 등에 대한 정보나 경조사 일정 등 신변잡기적인 내용이 뒤섞여 있어 업무를 목적으로만 작성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정보 출처와 기록 경위가 불분명하고, 그 기록이 기계적으로 반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증거 인정 범위에 대한 판단으로 재판을 원점으로 되돌림에 따라 2012년 대선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미뤄지게 됐다. 검찰이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추가 증거를 낼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법원에서 그 증거능력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법원은 수감 중인 원 전 원장이 신청한 보석 신청에 대해선 “허가할 만한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