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도 선생님 … “CCTV 안 봐도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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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월곶어린이집에서 지난 14일 학부모들로 구성된 동화구연 동아리 ‘이야기·이야기’팀이 7세 반 어린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부모가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곳은 보건복지부가 15일 발표한 ‘열린어린이집 부모 참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오종택 기자]

“와, ‘엄마 선생님’이다!”

 14일 오후 2시 경기도 시흥시의 시립월곶어린이집 늘푸른솔반(7세 반)이 시끌벅적해졌다. 이 어린이집 학부모 7명이 모여 만든 동화구연 동아리 ‘이야기·이야기’팀이 특별 수업을 하는 날이다. 동아리 엄마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가 되면 어린이집을 찾아 보육교사 대신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전래놀이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동아리 엄마들을 ‘엄마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갑게 맞았다. 이날 마련된 프로그램은 ‘장에 가자’란 전래놀이. 5세 반 시율이 엄마 이은미(35)씨가 수업을 진행했다.

 “다 함께 ‘장에 가자, 장에 가자’ 외친 다음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을 넣어서 ‘수박 사자, 수박 사자’ 하면 되는 거예요.”

 이 반 아이 17명과 동아리 엄마 7명, 보육교사 2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았다. 아이들은 장단 맞춰 몸을 흔들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장에 가자, 장에 가자. 로봇 사자, 로봇 사자.” 저마다 갖고 싶은 걸 이야기하고는 웃음보를 터뜨렸다. 담임 교사 장주연(33·여)씨는 “아이들이 ‘엄마 선생님 언제 와요’ 자주 물을 만큼 엄마 동아리 수업 시간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은미씨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어린이집 상황이 눈에 훤하다”며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쌓이니까 폐쇄회로TV(CCTV)가 있어도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열악한 보육환경이 저출산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어린이집이 도입하고 있는 열린어린이집 모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모형은 학부모가 보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린 교육과정을 지향해 부모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부모들이 건물 밖에서도 자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개방형 구조로 만든 월곶어린이집의 외경.

 월곶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15일 발표한 ‘열린어린이집 부모 참여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곳은 일반 어린이집과는 달리 건물 구조부터 열려 있다. 5개의 보육실 모두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외부로 통하는 창과 출입문 전체가 투명 유리로 돼 있다. 구조뿐 아니다. 아이들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학부모가 원할 때 언제든 어린이집을 찾아 아이들의 평소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육실마다 CCTV가 설치돼 있고, 학부모는 수시로 녹화 영상을 모니터링한다. 그러다 보니 아동 학대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동아리 외에도 인형·교구 제작, 꽃밭 가꾸기, 텃밭 농사, 소풍·견학 도움, 아빠 토요놀이 동아리 등 학부모 참여 동아리 6개가 활동 중이다. 학부모들은 매년 초 교사와 상의해 연간 계획을 세우고, 아이들 발달 과정에 맞는 프로그램을 짠다. 동화구연·전래놀이를 공부해 매주 한 번씩 직접 수업을 하고, 소풍이나 견학 갈 땐 보조교사로 참여해 교사들의 일손을 덜어 준다. 아빠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격주 토요일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놀이 프로그램은 3년째 꾸준히 이어진다.

 이런 덕분에 직장맘들의 만족도도 높다. 회사원인 7세 반 학부모 민세란(40·여)씨는 “지난해 가을, 텃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할 때 1일 보조교사로 참여했는데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선 이런 모습이구나’ 처음 알았다”며 “꾸준한 참여는 힘들더라도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고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일상을 아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곳 원아의 80%는 맞벌이 가정 자녀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은 직업과 관련된 재능기부 활동을 주로 한다. 은행원 엄마는 은행놀이를 준비해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가르쳤고, 경찰 아빠는 제복을 입고 찾아와 안전교육을 했다. 육아정책연구소 권미경 박사는 “국내에선 최근 아동 학대 사건 이후로 부모가 참여하는 열린어린이집 모델이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선진국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부모 참여 보육이 대세가 됐다”며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부모 참여도를 높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안심보육 대책의 하나로 열린어린이집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글=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열린어린이집=일반 어린이집보다 학부모 참여가 활성화된 형태의 어린이집. 개방형 보육실을 갖추고, 부모가 보육 프로그램·운영위원회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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