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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도, 쪼개서도 안 팔려 … 주가에도 발목 잡힌 우리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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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우리은행 민영화에 또다시 짙은 안개가 끼었다. ‘4전5기’에 나서지만 이번에도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다.

 금융위원회는 13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간담회를 열어 우리은행 매각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공자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회의 직후 “이달내 방안을 내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주변에선 벌써부터 회의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4월 이후 매각 주간사 등을 통해 ‘매물’ 을 살려는 곳을 미리 찾아봤지만 뚜렷한 매수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특히 이번에는 지분을 통째로 파는 것 외에도 4~5%씩 쪼개 파는 것을 전제로 매수 후보를 찾았지만 그마저도 반응이 신통찮았다는 후문이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몇몇 사모펀드 외에 관심을 보인 곳이 많지 않았다”며 “그렇다고 무한정 미룰 수도 없어 어떤 수위와 방식으로 매각 방안을 내놓을 지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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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정부는 201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지난해 4차 매각 추진 당시 정부는 예금보험공사 보유지분 51% 중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 30%를 일괄 매각하려다가 무산됐다. 은산(銀産)분리에 산업자본의 진출이 막혀있는데다, 올 들어 차선책으로 여러 명의 주요 주주에게 지분을 조금씩 나눠 파는 방식을 대안으로 검토했다. 이들 주요 주주가 협의체를 구축해 우리은행의 공동 주인이 되는 일명 ‘과점주주 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국내 연기금은 물론 장기 투자자인 해외 국부펀드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 반응 역시 미온적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동의 국부펀드 등이 유가 하락으로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인데다 국내 금융산업의 낮은 수익성, 여전히 과도한 규제와 관치 등을 거론하는 곳도 많았다”고 전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은행의 주가도 바닥 수준이다. 정부가 우리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의 원금을 회수하려면 주당 1만3500원은 받아야 한다. 하지만 14일 종가 기준 우리은행 주가는 9450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매각에 나섰다간 자칫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우려다. 사모펀드나 중국자본에 넘기면 돈은 좀 더 받겠지만 거센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정부가 정한 매각 3원칙(조기 민영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금융산업 발전)을 논란 없이 모두 충족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과감히 매각 원칙을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는다. 매각 3원칙이 사실상 매각을 막는 ‘트릴레마’(3중 딜레마)의 족쇄가 됐다.

 우리은행은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며 속만 태우고 있다. 은행 업황이 날로 악화하는 가운데 민영화가 표류하면 우리은행 주가는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경회 현대증권 연구원은 “우리은행의 주가는 대주주 지분 매각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우리은행 일부 임원진은 올 연말 기한으로 이광구 행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은행 민영화 추진을 위해 배수진을 친 것이다.

 금융권과 학계 일각에선 정부 보유분 중 일부를 미리 팔아 민영화 의지를 보이거나, 입찰자에게 주는 인센티브를 늘리는 등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찰자에게 나중에라도 매입 초기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콜 옵션을 부여하거나 일부 지분이 있더라도 사외이사 추천권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줘야 우리은행 매각이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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