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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번트로 1루 진출에만 만족 … 만루홈런 도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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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대 공대는 야구로 비유하면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후 1루 진출(단기 성과, 논문 수 채우기 등)에 만족하는 타자였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만루홈런(탁월한 연구성과)만 기억된다. 낮은 성공확률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서울대 공대가 자기반성을 담은 ‘2015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백서(부제:좋은 대학을 넘어 탁월한 대학으로)’를 발간했다. 서울대 공대가 백서를 발간한 것은 1991년 이후 24년 만이다.

  서울대 측은 “이건우(사진) 공대 학장의 요청으로 성원용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등 6명의 교수가 백서 발간에 참여했다”며 “주로 서울대 공대의 연구성과 등에 대한 자기 반성적 내용을 담았다”고 12일 밝혔다. 집필진은 “안정지대(cozy zone)에 머무르고 있는 교수와 학교 시스템의 개혁을 희망하며 발간한다”고 백서 발간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100쪽이 넘는 이 백서는 자기반성으로 가득하다. 특히 서울대 공대 시설 면적이 80년대 이후 약 3.7배 증가하는 등 양적인 부분은 크게 성장했지만 질적 성장을 함께 이루지 못한 면을 통렬히 지적하고 있다. 백서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로 ▶양적 지표로 평가를 받고 ▶교수들이 바쁘며 ▶교수들 간 학문적 소통의 부족 등으로 ‘타화수분(他花受粉·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 꽃을 맺는 것)’의 기회가 적다는 점을 꼽았다.

 백서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한 방안으로 ▶경직된 목표 위주의 연구비 지원을 개선하고 ▶교수 평가에서 연구의 양이 아니라 비전과 노력을 평가해야 하며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는 ‘고슴도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또 “서울대 공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구비의 증가 또는 박사과정 학생 수의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공대의 연구비, 교수당 연구비 등이 해외 대학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의 지난해 공대 연구비 총액은 1659억원으로 미국의 MIT(4385억원)·스탠퍼드대(3971억원)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교수당 연구비 역시 4억9200만원으로 스탠퍼드대(15억30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행 교수 임용제도의 문제점으로는 세계 최고 역량을 가진 교수라도 해당 전공에서 자리가 나지 않으면 임용되기 어려운 점과 정년보장 심사 때 교수들 간의 ‘온정주의’가 크게 작용하는 점이 지적됐다.

  이 학장은 “타성에 젖지 않고 낮은 확률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봤다”며 “재임 기간 동안 산학협력이나 벤처창업 등에서도 성과를 내고 세계적으로도 평가를 받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연구 중심의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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