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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임신 매년 4500만 건, 피임법만 알았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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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피임약은 불임술보다 높은 피임 효과(99.7%)가 있다. 반드시 생리 주기 첫날부터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낙태 건수는 연간 17만여 건. 가임기 여성 100명당 1.58명꼴이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아시아권, 그중에서도 개발도상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피임을 터부시하는 사회·종교적 배경 탓, 또 교육의 부재 등으로 여성이 주체적으로 피임을 하기 어렵다. 이런 아시아의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한 장이 열렸다. 지난 6일, 아시아권 국가의 여성 피임에 관한 미디어 심포지엄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한국 여성 낙태 연 17만여 건

계획된 임신은 축복이다. 하지만 원치 않은 임신은 여성에게 큰 시련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매년 아시아에서는 4500만 건 이상 의도치 않은 임신을 한다.

원치 않은 임신을 막으려면 피임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아시아 여성은 피임법에 대해 무지하다. 동아시아 인구가족협회 노라 무라트 이사는 “어렸을 때부터 피임법을 가르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종교적 이유, 그리고 피임법을 아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가치관 때문에 교육을 기피한다”고 지적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잘못된 피임법도 소개됐다. 필리핀 세인트루크 메디컬센터 델핀 탄 교수는 “콘돔은 아시아에서 불임시술(난관결찰술), 자궁 내 피임장치(IUD)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하는 피임법이다. 하지만 의외로 피임 성공률은 떨어진다. 남성이 사정하기 직전에 나오는 쿠퍼액에도 정자가 소량 있는데, 사정 직전 콘돔을 씌워 피임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콘돔 표면은 손톱에 긁혀 보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피임약 복용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루는 세션도 마련됐다. 탄 교수는 “피임약은 매일 복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자궁 내 장치에 맞먹는 99.7%의 피임 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 때문에 피임약 복용을 꺼리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 참가한 기자들이 아시아권 국가 피임 실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가장 많이 오해하는 내용이 피임약을 오래 복용하면 임신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다르다.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면 바로 다음 달부터 임신이 가능하다. 피임약 복용군과 대조군의 대규모 연구에서도 임신율에 차이가 없었다. 피임약이 체중을 증가시키고 여드름을 생기게 한다는 오해도 있다. 이도 옛말이다. 2000년대 이후 출시된 드로스피레논이라는 성분이 함유된 피임약은 몸안의 수분이 정체되는 것을 막아 오히려 체중이 감소하기도 한다. 여드름 및 지루성 피부염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체중 증가, 여드름 발생은 오해

부작용에 대한 오해도 많다. 피임약 복용 후 일부 여성에게 일시적으로 가벼운 메스꺼움, 두통, 불규칙한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는 “증상은 약을 처음 먹었을 때 몸이 호르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또 피임약이 막연히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는데 이도 잘못된 상식이다. 오히려 생리통과 생리 양을 줄여 관련 질환 치료제로도 사용된다. 심혈관질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여성이 임신하면 생길 수 있는 위험률과 비슷해 별 의미가 없다. 유럽피임협회 요하네스 비체르 박사는 “아시아 여성이 다양한 피임법을 잘 알고, 스스로 몸을 보호하도록 미디어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1개 국제 NGO 및 의·과학 단체는 매년 ‘세계 피임의 날’ 행사를 개최해 인식 개선을 돕는다. 한국에서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주축이 돼 피임 실패로 인한 낙태를 막도록 ‘피임·생리 이야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바이엘 헬스케어는 1961년부터 개발도상국의 가족계획 단체와 소비자에게 25억 박스의 피임약을 지원했다. 또 국제인구개발회의(IC)를 후원한다. 국내에서는 매년 ‘피임의 날’을 통해 올바른 피임법을 알리고 있다.

글·사진(싱가포르)=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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