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적(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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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20국
[제4보 (49~65)]
白.曺薰鉉 9단| 黑.趙漢乘 6단

조훈현9단에게 물어봤다. 전보 패의 바꿔치기는 왜 흑이 유리한 것일까.

좌상에서 흑이 살아버린 뒤 백에 남은 것은 '20집의 실리+중앙 세력'이다. 흑은 좌하만 해도 20집이다.

그리고 남은 지역은 전부 흑이 기득권을 주장하는 상황인데 이 가치가 백의 막연한 중앙세력보다는 훨씬 크다고 한다.

"게다가 백은 모양이 한쪽으로 편중되었거든."

曺9단의 이 한마디가 사실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바둑이란 모양이 한쪽으로 편중되면 전략에 큰 제약을 받는다. 하나 뿐인 모양이니까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상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그 약점을 이용하여 온갖 노략질을 해오는데 이쪽은 매번 눈물을 머금고 물러서야 한다. 승부를 떠나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曺9단은 그래서 '중앙 백세력은 없다'는 생각으로 바둑을 두어간다. 중앙세력마저 없다고 생각하니 백은 그야말로 빈주머니.

그래도 이게 편한 것이다. 49는 견실한 행마의 표본. 50으로 젖혔을 때 趙6단은 51로 꼬부렸는데 이 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도1'처럼 흑1로 그냥 막으면 백은 2쯤 벌려둔다. 이후 백은 A나 B를 골라잡아 선수할 수 있다.

또 백△는 가벼운 돌이라서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 51은 그 '선택권'을 없애려는 수다. 상대를 무겁게 하여 버릴 수 없도록 하려는 수다.

曺9단도 당연히 응수가 바뀐다. 57 자리에 늘지 않고 52로 호구하여 귀쪽과 끈적끈적한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이제 흑도 C로 막고 싶은 마음은 없어진다. 53부터 중앙을 눌러 살려주고 대신 세력을 얻어내는 쪽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바둑이란 이렇게 매수마다 서로 반응하며 코스를 바꾸어 나간다.'한번 내집이면 영원히 내집'이라는 사고는 바둑의 적이다. 64를 손빼면 '참고도2'처럼 전멸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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