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라 경제 생각하는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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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운명은 국민연금이 손에 쥐게 됐다. 어제 삼성물산 지분 11.2%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는 투자위원회를 열려다가 취소한 모양이다. 국민연금이 직접 합병의 찬반을 결정할지 또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위임할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만큼 휘발성이 강하고 예민한 사안이다. 그래서 더욱더 원칙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우선 국민연금은 우리의 소중한 노후 자산을 맡고 있는 만큼 결코 수익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각각 1조원 정도씩을 투자해 놓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으로선 합병이 성사되든 무산되든 손해 볼 것 없는 중립적 입장이다. 그렇다면 두 회사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거둬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올지를 따지는 게 핵심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나라 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미 국민연금은 30대 그룹 184개 상장 계열사에 대해 평균 8.66%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를 좌우하는 24개 핵심 계열사의 지분율은 평균 9.26%에 달한다. 따라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결정은 우리 경제 전체를 좌우하는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길게 멀리 보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헤지펀드가 공격하면 기업 경영은 멈춰 서고, 이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황무지였다는 과거의 경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국내 대기업들에 큰 교훈을 던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차등의결권, 포이즌필(Poison Pill), 황금주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영권 보호 장치가 형편없이 허술한 게 사실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국민의 신뢰를 쌓지 못해 자초한 결과이자, 반드시 필요한 제도조차 대기업 특혜로 비판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 대기업들도 우리 사회와의 접촉면을 늘려 반(反)대기업 정서부터 누그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안심하고 경영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마련되고, 기업들의 경영도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