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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참치액 써봤수?” 아줌마들 입소문 타고 ‘차줌마’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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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30일 경북 상주의 한라식품 공장에서 이재한 대표가 참치액의 빛깔 등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훈연참치(가쓰오부시)와 다시마·무·감초 등이 혼합된 독특한 맛과 사용의 편리함 때문에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국내 조미료 시장은 화학조미료,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만든 종합조미료 시대를 거쳐 현재 천연조미료까지 발전해왔다.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영역을 확장하는 조미료가 있다. 조미료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액상 조미료다.

 액상 조미료 시장을 처음 개척한 기업가로 한라식품의 이재한(40) 대표가 꼽힌다. 이 대표는 액상조미료란 단어조차 낯설던 1999년 참치액을 만들었고, 지난해엔 4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액상조미료 시장에서 점유율 1위(65%)를 기록하고 있다. 올 초 탤런트 차승원씨가 한 케이블TV에서 참치액으로 요리를 하면서 조명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참치액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비장의 무기’로 통한다.

도전하면 길은 열린다. 이재한 대표는 참치액 성공을 발판삼아 건강차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경북 상주의 함창농공단지에 위치한 한라식품 공장에 들어서자 한참 내륙인데도 바다 냄새가 진동했다. 20여 명의 주부 직원들이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이 곳에서 하루 300L의 참치액이 생산된다. 참치액을 만드는 기본 재료는 가쓰오부시로 알려진 훈연참치다. 보통 오꼬노미야끼 같은 일본 요리 위에 얹혀져 너풀거리는 가다랑어포가 훈연참치를 얇게 깎은 것이다. 참치액은 태국 근해에서 잡은 가다랑어를 현지공장에서 단단하게 말린 훈연참치에, 국내산 다시마와 가을무·감초를 섞어 제조된다.

 한라식품은 상호대로 제주도에서 태어난 기업이다. 시조 시인이자 제주도 문예협회장까지 지낸 부친(이용상)이 1970년 설립했다. 이 대표의 형님이 물려받아 94년 상주로 이전했는데, 훈연참치를 만드는 데 상주산 참나무가 유명했기 때문이다. 가다랑어포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다 98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과 함께 도산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대학(제주대)까지 제주에서 지낸 이 대표가 육군 제대 후 곧바로 뛰어든 일은 친인척이 꿔준 4억5000만원으로 상주공장을 경매에서 되찾는 일이었다. 이후 액상조미료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이 대표가 참치액 개발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이 대표가 처음 참치액을 들고 시장에 나갔을 때 “참치액이요? 참치로 만든 젓갈인가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처음 시장뚫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 대표는 1999년 제품개발에 성공한 참치액을 들고 무작정 서울 강남의 삼풍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 제품을 알리려면 직접 먹어보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당시 영업을 책임지던 직원만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의 부녀회장을 만나기 위해 하루 온 나절을 밖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낯선 젊은이들이 부녀회장을 만나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그는 경비아저씨에게 담배를 사주며 부녀회장의 집을 묻고는 무작정 기다렸다. 오후 8시쯤 됐을까. 아파트 관리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녀회장의 남편이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을 밖에 하루 종일 세워두었다”고 부인을 나무라며, 부녀회 알뜰 장에서 제품을 팔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날이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직접 참치액으로 만들 수 있는 메밀국수와 우동을 만들어 주부들이 직접 맛보고 살 수 있도록 1대 1 판촉에 나섰다. 제품의 품질, 즉 맛은 자신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치액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스스로 영업사원이 됐고,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입소문은 다시 요리사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내로라하는 요리사 수십 명이 ‘참치액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몇 군데 알뜰 장을 거쳐 서울 을지로 중부시장에서 천막을 치고 가스레인지에 직접 음식을 만들어 홍보한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 참치액 900ml 한 병은 9500원이었다. 간장 값이 2500원 전후였으니 조미료 치고는 비쌌지만, 시식을 한번 해본 주부들은 바로 단골 고객이 됐다.

 또 하나의 계기는 서울 하나로마트 양재점 진출이었다. 당시 이 점포는 단일 규모로 국내 매출 1·2위를 다툴 만큼 큰 점포였다. 이 대표는 이곳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또 한 달 넘게 공을 들였다. 하지만 무명의 중소기업 제품을, 그것도 달랑 제품이라곤 하나뿐인 회사를 받아줄 바이어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 책임자가 ‘참치 액 하나로 100인분을 뚝딱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던 이 대표에게 메밀국수 50인분, 우동 50인분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직원 투표에 붙일 기회를 줬다. 이 대표는 즉시 100인분을 만들었고, 직원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 대표에겐 3개월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대표와 직원들은 매일 시식행사를 했고, 시식요원들이 업무가 끝나거나 쉬는 시간이면 이 대표가 직접 시식요원이 됐다. 관심을 보이는 주부들이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주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조리 방법을 설명했다. 이렇게 판매 첫날 130병을 팔았다. 그날 하나로마트에서 단일품목으로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이후 현대백화점·이마트·킴스클럽·하나로마트·롯데마트 등 대형유통매장에 속속 진입했다. 가격을 1만1000원대로 올렸는데도 인기는 계속돼 한라식품 매출은 매년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참치액으로 ‘작은 성공’을 이룬 후에도 이 대표의 도전은 계속됐다. 처음엔 참치액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프리미엄 참치액’, ‘고추랑 참치액’ 등으로 제품 수를 늘렸다. 프리미엄 참치액은 훈연참치향이 낯선 소비자를 위해 인삼과 표고버섯을 추가하고, 더 맑은 빛깔을 띄게 했다. 이후 매운 음식에 잘 어울리도록 매콤한 맛을 집어넣어 개발한 고추랑 참치액도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2005년 태국에 공장을 세울 때도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가다랑어의 어획량이 줄고 가격이 올라, 상대적으로 품질 좋은 가다랑어가 잘 잡히는 태국 현지의 공장 설립은 불가피했다.

 태국공장 준공은 한라식품에 또 하나의 도전과제를 안겼다. 바로 ‘모링가 인디아 티’라는 건강 차 시장 진출이다. 혈당을 조절해주고, 피로회복과 노폐물 배출을 돕고, 모유 수유를 도와주는 등 다양한 효능을 가진 모링가는 동남아에서 잘 알려진 식물이다. 특히 인도에서 나는 sk1 종자가 가장 효능이 좋은데, 이 대표는 태국에서 이 종자의 발아부터 공을 들였다. 보통 100개 중 5개 정도만 발아에 성공했다. 처음 태국에 이 종자로 모링가 밭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거쳐 지금은 5000분의 모링가 나무를 가꾸는 데 성공해 모링가 인디아 티를 국내에 선보일 수 있었다. 모링가 나무의 여린 잎만 골라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따고 덖는 과정은 기존 생산공정보다 몇 배나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지만 또 다른 도전이기에 이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넘친다.

상주=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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