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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최경환, 경제 못 살리면 당 복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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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대통령은 유승민을 쳐낸 뒤 어쩔 생각이었을까. 그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을 앉히려 했을까. 그게 누구일까. 그게 누구인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봤을까. 친박(親朴)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원내대표를 대통령 마음대로 골라 앉힐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게 아니라면 그저 유승민이 싫어서, 무조건 쳐내고 보자는 심사였을까. ‘거부권 정국’은 이렇게 의문투성이다. 의문은 주로 대통령이 만든 것들이다.

 대통령에겐 감정보다 국정이 우선돼야 한다. 자연인 박근혜는 유승민이 미워 죽겠어서 나라 꼴이야 어찌 되든 혼쭐만 내줘도 되겠지만 대통령 박근혜는 그래선 안 된다. 유승민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쳐내고 나면 누구를 후임으로 앉혀야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지까지 생각했어야 한다. 그런 생각도 없이 ‘거부권 정국’을 만들었다면 이는 직무유기다. 대통령의 결정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통치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떠올렸다. 최경환은 대통령의 복심 중 복심이다. 그가 당으로 돌아가 친박의 구심점이 되면 대통령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여 대통령에게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얼른 접으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최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우선 모양이 사납다. 유승민이 버티기에 들어갔다. 유승민이 퇴진한들 최경환이 바통을 이어 원내대표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민은 물론 새누리당 비박(非朴)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제다. 메르스에 그리스 사태까지 터졌다. 중국 경제도 심상찮다. 미국의 금리 인상도 예정돼 있다. 각종 경제 지표는 6년 만에 최악이다. 재정을 동원하지 않으면 올해 3% 성장도 어렵다. 최경환이 사령탑을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국회에 1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청키로 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 경제, 최경환은 적진 한복판에서 전투를 치르는 장수와 같은 상황이다. 이럴 때 장수를 바꾸는 건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나는 최경환 부총리에게 역제안을 하련다. 아예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라. 당 복귀 대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라. 경제부총리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게 “경제를 살리겠다” 백마디 말보다 낫다. 부총리가 앞장서면 유일호(국토교통부 장관)·유기준(해양수산부 장관)도 따를 것이다. “10개월짜리 ‘먹튀’ 장관”이란 비난도 수그러들 것이다. ‘경제 올인’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 부총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지난달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한창 그의 7월 당 복귀설이 돌 때였다. 그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할 때까지 당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돌아간다고 해도 “7월은 절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내친김에 “아예 총선 불출마,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내 맘대로 되나. 장관 자리라는 게 (임명권자가) 내일 그만두라면 그만둬야 하는 자리인데….”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부총리는 늘 ‘골든타임’을 얘기해 왔다. “내일이면 늦다”며 개혁을 다그쳤고 “경제 활성화법을 제발 통과시켜 달라”며 입만 열면 국회 탓을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겁을 주며 “경제·경제·경제”를 말했다. 지금이 그런 말들의 진정성을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할 때다. 최경환의 조기 당 복귀는 대통령과 부총리가 자신의 말을 뒤집는 것과 같다.

 벌써 집권 3년차가 절반을 넘어섰다. 또다시 경제부총리와 장관을 바꾼다며 청문회로 날을 샐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바뀐 장관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여유는 더 없다. 그때 가서 또 국회 탓만 하는 청와대를 눈뜨고 지켜볼 인내심은 더더욱 없다. 아무리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국회 탓’이라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그래선 안 된다. ‘만사불통지로(萬事不通之路)- 모든 길은 국회에서 막힌다.’ 이런 나쁜 유산을 만든 건 팔 할이 청와대요,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