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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주소'1000억 헛사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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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거액의 예산을 들여 추진 중인 주소체계 변경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전국 1백43개 시.구의 경우 올해 말까지 '생활주소'도입을 끝내기로 돼 있으나 일부 지자체는 착수조차 못했고, 도입한 곳도 대부분 활용하지 않는다.

거의 1천억원에 이르는 예산(지자체 예산 8백여억원, 국비 1백78억원)을 투입한 주소체계 변경 사업이 투자액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생활주소 도입 지연=광주시는 1999년 8월부터 2001년 말까지 65억원을 들여 8천여개 도로와 13만여개 건물에 새 주소를 부여했다. 세차례에 걸쳐 생활주소 안내지도 40만5천부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집이나 직장의 생활주소를 알고 있는 시민은 거의 없다. 시청과 구청에서 보내는 각종 공과금 고지서에도 기존 주소만 적혀 있다.

맹수기 광주우체국 집배실장은 "우편번호를 생활주소 기준으로 일원화하지 않으면 생활주소의 활용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119지령실 관계자도 "신고를 받고 출동할 경우 큰 건물 위주로 위치를 찾기 때문에 생활주소를 쓰지 않게 된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는 2001년 말까지 13억원을 들여 1만8천71개 도로명과 4만7천개 건물에 새 주소를 부여했으나 주민은 물론이고 관공서조차 활용하지 않는다. 제주시는 2001년 7월부터 고지서에 생활주소를 병기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5일 현재 전국 1백43개 시.구 가운데 새 주소 도입작업을 마친 곳은 63군데뿐이다. 나머지 중 70곳은 작업이 진행 중이고, 10곳은 착수조차 하지 않았다.

왜 지연되고 있나=주관 부서인 행자부의 치밀하지 못한 사업 추진방법에 일부 지자체.주민들의 무관심이 겹쳐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경남도 지적과 안병태씨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화급한 사업이 아니다보니 시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만 서울시 행정과 새주소 부여팀장은 "지자체들이 생활주소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과 새 주소특별법 제정 등 관련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두수 행자부 '도로명 및 건물번호 부여 지원단'단장은 "관련법 정비는 전국에서 인프라 구축(생활주소 도입)이 이뤄진 뒤 가능하다"며 "유럽에서 주소체계를 변경하는 데 50년 걸린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자부는 이 제도가 활성화된 지자체에 대해 특별교부세를 우선 지원하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군(郡)지역에 대해서는 농어촌 모델을 개발, 2004~2009년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해석.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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