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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내다본다<신년특집 1>과학자와 철학자의 예견 특별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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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정흠교수=올해로 중앙일보가 창간한지 20년을 맞는데 또한번의 20년후인, 2005년, 즉21세기는 어떤 세계가 될 것이며 그 21세기를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오늘 대담의 주제인것 같습니다.
21세기가 어떻게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이는 대단한 변화를 수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상상키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번 우리의 지난 20년전을 돌아봅시다. 고속도로도 없이 샛길 같은 국도에 먼지를 풀풀 풍기며 달리던 시절, 겨우 몇대 뿐인 흑백TV는 세무사찰이나 도둑의 표적이. 되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앞으로의 20년은 그 몇배의 변화를 안고 올것입니다.
소광희교수=그렇습니다. 20년전이 아니라 요1년 사이만해도 어지러울 정도의 변화가 일고 있지 않습니까.
김=그래요. 국제DDD, 즉 즉시자동교환전화가 개통된 것은 1년 여전인 83년 8월 이었습니다. 이제 뉴욕·제다·런던등 세계 어디든 안방에서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세계 6억대의 전화기증5억대, 50개국과 직접 통화가 가능해진 것이지요. 명실상부한 지구촌이 형성된 것입니다.
옛날에 2백m밖의 김서방을 부르면 왕복에 1.2초 걸렸던 것이 이제 지구 저편을 부르는데 0.6초밖에 안 걸리는 세상입니다. 바로 1년만의 변화지요. 20년후를「억지로」상상해 본다면 단추만 누르고『뉴욕 나와라』하고 말만해도 화면에 모든게 나타나겠지요. 음성인식기술이 발달한 결과지요.

<인간무기력화 경계>
소=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정신면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할 것입니다. 농경사회 이후의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우선 주체할 수없는 시간을 갖게 되겠지요.
그 덤으로 얻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21세기를 맞는 인류의 가장 큰 당면과제가 아닐까요.
김=그렇습니다. 인간이 겪은 농경혁명이 동물적인 상태의 인간에게 약간의 인간다운 생활을 제공하고 공업화사회가 인간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했다면 앞으로 도래할 정보화사회에선 진짜 인간해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기계화가 인간을 노예화 시키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지난 5년 사이 전기밥솥이 주부들을 해방시킨 것을 봐도 알수 있어요.
소=희랍시대 이래「마르크스 까지도 노동개념은 늘 질곡과 슬픔, 괴로움이 주된 내용이었읍니다.
이제 기계화로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게 과연 인간해방인가, 인간의 무기력화·무중력화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면도 검토해볼 문제입니다. 노동을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다와지는 면은 없을까요.
김=기계화는 단순 되풀이 노동을 대치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도 지루한 단순두뇌노동을 대신해주는 것뿐입니다. 산업혁명은 단순육체노동을, 정보혁명은 단순두뇌작업을 해결해 줍니다.
이제 인간은 비로소 자기내부를 성찰하는 계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앞으론「하이테크」에 대응하는「하이터치」정신, 즉 정신적 내면에 터치하려는 의지가 대두될 것입니다. 첨단기술이 발달할 수록 인간성 존중, 인간성 회복, 인간과 자연·기계와의 조화문제가 대두할 것입니다.
소=정신과학자들의 걱정은 무한정한 기술문명의 발달에 맞춰 과연 인간정신 자체도 발전할 것이냐 하는 적입니다.
2천년전의 철학자·문인들의 글을 볼때 오늘날 어떤 면에선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오는 갭이 결국 인간성의 마멸과 위기를 몰고오진 않을까요.
김=과학이 너무 발달하다보니 사회사상과구조·가치관·도덕관념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읍니다. 지금까진 따라 갈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기계에 서비스하던 시대였읍니다.
그러나 이제 기계가 사람을 위해 일하는 시대가 옵니다.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것을 생각하는 시대가 온다고 낙관합니다.
소=물론 자연과학자들은 낙관론을 바닥에 깔아야겠지요. 그러나 정신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변화개념은 넣을 망정 진보개념은 잘 넣지 않습니다. 정신적 변화가 반드시 정신적 진보를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희랍의 역사가「헤로도투스」는『페르시아 전쟁기』를 썼지요. 그가 쓴 역사의 길이는 30년밖에 안되지요. 실제 참전자들의 얘기를 토대로 매우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역사기록은 시대가 길어지고 또 광역화됩니다. 로마시대로부터 역사책을 쓰는데는 가위와 풀만 가지고 했다는 얘기도 있읍니다. 그전 것들을 자꾸 편집만 한 것이지요. 과연 정직한 역사가 기록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사학 자체가 발전했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예만 봐도 과연 인간의 정신활동은 진실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혔는지 궁금합니다. <여가엔 창조활동을>
또하나 걱정되는 사례로「정치」문제가 있읍니다. 정치는 실제로 원시감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지요. 로마제국 이후 정치인의 의식이나 정치형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의문입니다.
노동에서의 해방문제도 그렇습니다. 기계화로 인간이 확보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정신적 창조작업이 어느 시대나 극소수의 몇 사람들에게 한정된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때 과연 이 사회가 시간이 남아서 주체하지 못하는 때가 될때 인간성의 마멸을 초래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는지요.
김=글쎄요. 모든 것이 옛보다 못하다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기술의 급속한 도입으로 야기된 문제들이 없을 순 없습니다.
유럽은 8세대, 2백여년에 걸쳐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동안 그 사회적 모순을 서서히 소화할 수 있었고 일본만해도 1백년의 시간적 여유를 가졌읍니다. 그러나 우린 불과 한 세대도 안되는 동안 5백∼1천년에 맞먹는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과학문명을 받아들일 때 기계, 즉 하드웨어만 받아들일 뿐 그 배경문화나 정신문화 같은 소프트웨어는 전연 무시함으로써 과학기술은 무미건조하다 든가 피가 안통한다는 오해까지 낳고 었읍니다.
소=네덜란드의 역사학자「호이징가」는『중세의 가을』서문에서 서양의 중세는 살기 어려운 암흑시대로 생각하나 삶의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한 적이 있읍니다. 그때 즐거워서 깡총깡총 뛰는 행복도 있었다면 오늘날 과연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느냐하는 것이지요.
김=과학기술의 발달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결부될 수 없는 가치관의 문제라고 봅니다. 행복의 문제는 매우 상대적이지요.
소=사회보장제도가 잘 돼있어 개인이 하나하나 신경 안씨도 생활의 밑받침이 잘 돼있는 북구의 자살률이 살기 어려운 인도보다 높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고민은 지식에 비례>
노동에서 해방되고 개인주의 사고가 팽배할 때 걱정되는 것은 도덕적인 혼란, 정신의 무중력 현상이 뒤따르리라는 점입니다. 대중적으로 정신적 지주는 상실된 상태에서 통치자의 일방적 프로퍼갠더·대중조작은 개인의 깊은 사유를 마비시킬 우려가 있읍니다. 개성을 가진 뚜렷한 존재가 아닌 무개성적 평준화 집단으로 전락할 지도 모릅니다.
종교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으나 오히려 종교로부터 더욱 일탈하는 현상이 이미 서구에서 일어나고 있읍니다. 21세기의 변화를 과학쪽에선 일부 예측할 수 있겠지만 정신면에서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김=과학기술적으로도 예언이 불가능하니 정신면에선 더 힘들겠지요.
그러나 사회복지가 잘되면 새로운 갈등, 즉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타인과의 싸움에선 이길 수도 있으나 자신과의 싸움에선 지기 쉽습니다.
북구에서의 자살도 그런 현상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데 과학기술이 해결할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어쨌든 21세기의 우리현실은 더많은 고민을 갖게 되겠지요. 고민은 으례 아는 양에 비례하니까요.
소=21세기의 급속한 변화와 상관없이 우리 민족의 최대과제는 통일문제가 되겠지요. 일찌기 통일상태를 체험한 세대는 재결합의 의지를 버리지 않겠지만 21세기를 주도할 분단후 세대가 편리한 과학기술생활 속에서 통일의지를 제대로 살려갈지 우려됩니다. 결국 민족통일은 이 세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 같군요.
김=그렇습니다. 이제 오늘이 내일로, 또 미래로 연결되는 점을 상기할 때 오늘날의 문제점을 시정하는 작업은 바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의 시발도 되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21세기를 앞둔 이 시점부터는 정신문화계발에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이시대 문제의 기원은 과학기술문명을 너무 급속도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면 정신문화를 너무 소홀히 한 결과의 하나일 것입니다.
과학은 만국공통이어서 급하면 흡수할 수도 있지만 문화란 그렇게 되는게 아니지요. 우선 먹기에 바빠 기계만 들어오던 시대에서 이제 허기증도 멎었으니 맛도 보고음미하며 소화할 때가 된 것입니다.
소=2005년께면 국민소득 5천달러 시대를 맞는다고 하는데 철학자들은 미래 예언적인 얘기를 별로 안합니다. 현재 5천달러대의 경제성장국을 통해 유추해 볼수는 있겠지요.
8천달러의 독일의 경우 높은 실업수당을 받고 제3국민을 데려다 일 시킨지 20년 지나니 정신적인 퇴보현상이 현저해졌다고 합니다.
청소년·폭력문제 같은게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노동기피현상도 벌어지고 있답니다.
우리사회에선 치유책으로 정신문화 계발을 강조하나 그게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는게 아니지요.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이 제대로 서야 밭도 잘고, 씨도 뿌리고 거름도 줄텐데 전혀 불투명한 상태에선 어려운 일입니다.
김=확실히 미래에 대처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거의 무방비상태가 아닙니까.
교육하면 대만생각이 나는데 그들은 가난한 시대에도 교육에만은 집중투자를 했습니다. 국시의 하나가 교육일 정도였지요. 대만교육의 장점은 가정교육에 토대를 두고있다는 점입니다.
소=우리 교육에선 정신문화와 관련, 교과내용에 정신적인 내용, 즉 문학작품이나. 예술 등을 자꾸 넣어줘야 되는데 가능하면 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읍니다.
역사교육은 이데올로기 교육화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하는 생각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오직 발췌된 단편적 지식의 축적만이 중요시 될뿐 교훈적·정신적 지주를 형성시켜 주지 못하고 있읍니다.
가정교육도 그렇습니다. 가정교육이란 가르쳐서 배우는게 아니라 어른들과의 생활을 통해 습관화되는 교육입니다.
이제 핵가족화된 가정에서 이런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핵가족은 가정교육의 장이 될수 없게됐어요.

<노동기피 대처해야>
김=그래요. 핵가족마저 내부붕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정의 정의는 혈연보다는 하루 세끼 밥을 같이 먹는데 있읍니다. 그것이 힘든 사회에선 형식상의 가정만이 존재할 뿐 정신적으론 붕괴된 것이지요.
TV가 한집에 1대뿐일 땐 그래도 그 것이 구심적 역할을 해서 모이게도 하고 공통의 화제도 제공했지만 여러 대를 갖고 각자 보는 시대엔 가정의 정신적 붕괴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소=그렇지요. 가훈이나 하나 정하고 부모노릇 다 했다면 큰 문제지요. 멀지 않아 다가올 21세기에는 남아도는 시간을 인간답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슬기가 필요합니다. 그 지혜를 길러주는 첩경은 교육뿐입니다.
김=단순한 지식습득방법은 다양해질 것이며 많는 기계들이 도와줄 것입니다. 문제는 전인교육에 있읍니다. 전인교육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학급규모를 줄이는 일이지요. 한번에 해결하려고 욕심부릴게 아니라 서서히 개선시킨다는 자세가 중요하지요. 과학기술시대에 걸맞는 수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소=앞으로 닥쳐올 개별화 사회의 문제점을 교육을 통해 대비해야겠어요. 이렇게 원자화 되다간「콩가루 사회」가 되고 말것입니다. 과학시대에 상대방을 수단 아닌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의식을 키워줘야겠읍니다. 정신문화는 자생력이 있어야 진정한 생명력을 갖는데 교육만이 그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정리=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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