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 금지는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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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소장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어떻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서열화와 과다경쟁을 방지할 수 있는지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을 공개하는 편이 로스쿨 서열화를 깨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25일 로스쿨 수료생들이 응시하는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를 금지한 변호사시험법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헌재는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의 의견으로 “이 조항은 응시자들의 알 권리(정보공개청구권)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변호사시험법 18조 1항은 ‘시험 성적은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로스쿨 간 과다경쟁을 막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법학교육의 내실을 다지자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로스쿨 출범 초기부터 찬반 의견이 팽팽히 엇갈려 왔다. 중요한 평가지표가 될 수 있는 변시 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기존의 대학 서열이 곧 채용 서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로스쿨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확산돼 왔다. 하지만 “자격시험 성적이 아닌 법학수업을 통해 법학교육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로스쿨 도입 취지”라며 공개를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2011년 11월 충남대 로스쿨 재학생들은 “개인 성적이 공개되지 않아 지방 소재 로스쿨 출신은 우수한 법학실력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변시 성적 공개가 기존의 서열을 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헌재는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기존 서열에 따라 합격자를 평가하게 돼 서열화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고 제시했다. 특히 조용호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변호사시험의 높은 합격률과 성적 비공개는 로스쿨을 기득권의 안정적 세습 수단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신규 변호사 채용 시 객관적 지표가 없어 검증에 애를 먹어 왔다”며 “변시 성적 공개로 어느 정도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학교 성적을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더욱 짙어져 법학교육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했다.

 로스쿨 출신 최모(32·3기) 변호사는 “법조인 양성과정에서 시험성적만이 아닌 다양한 평가 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선·임장혁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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