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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열성 LG 팬 … 요즘은 한화 경기가 재미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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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승용차를 탄 사자가 속도를 무시한 채 질주하다 독수리 경관에게 딱 걸렸다. 사자는 독수리 경관을 향해 “나 4연패(連<9738>)한 사자야”라며 거들먹거린다. “이러다 우승 못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며 오히려 큰소리친다. 독수리 경관은 “조용히 하시고 빗자루로 쓸어버리기 전에 이 딱지나 받으시죠”라고 맞선다. 딱지에는 ‘패(敗)’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6월 10일 야구친구 ‘프로야구 카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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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작가 최훈(43)의 만화에는 재치가 번뜩인다. 이 만화에서 사자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독수리는 한화 이글스다. 빗자루는 3연전을 모두 이긴다는 야구용어 스윕(sweep·쓸다)을 의미한다. 실제 한화는 지난 9~11일 삼성전 스윕에 성공했다. 2555일 만이었다. 최 작가의 만화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매일같이 야구를 보고 야구 기사를 읽어야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림 하나, 단어 하나에 그의 독특한 코드가 숨어 있다. 야구 팬들은 그의 만화를 해석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요즘 인터뷰가 없어 편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인터뷰 요청 전화가 왔다”며 웃었다. “서울 가본 지도 오래 됐다”는 그는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용인의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야구를 고민하고 만화를 그린다.

 최 작가는 야구전문 미디어 야구친구에 ‘프로야구 카툰’을 연재 중이다. 스포츠신문에 『클로저 이상용』 『최훈의 돌직구』 등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야구 만화를 그린 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마감시간에 맞춰 창작을 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내 만화가 점점 재미 없어지지 않나’는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그림을) 막 그리는 만화가”라고 그는 자평했다. 야구 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도 독특하다. 그는 2002년부터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하대리』에서 고시생이라는 이유로 사랑에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후 “고시생은 연애도 못하냐”는 악플에 시달리며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최 작가는 평소 좋아했던 야구를 만화 소재로 삼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만화로 생긴 스트레스를 만화로 치유한 것이다. 그는 한국외대 영어과 3학년 때인 1997년 『I even kill the dead』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등단에 성공하면서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소설보다 만화를 더 좋아했던 그는 만화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만화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 한국인 작가가 데뷔하긴 쉽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과외로 돈을 벌면서 만화를 계속 그렸다. 2000년대 초반 스포츠신문에 연재한 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2004년에는 웹툰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최 작가가 만든 캐릭터는 앙증맞은 데다 각 팀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최근에는 각 구단과 저작권 계약을 맺고 캐릭터 피규어도 출시했다. 그가 대주주로 참여한 야구친구 앱은 지난해 대한민국 모바일 앱 어워드에서 으뜸앱으로 선정됐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그의 만화를 구독하는 팬이 100만 명에 가깝다.

 그는 “야구는 끊임없이 실수를 줄여 나가며 묵묵히 앞으로 나가는 경기”라며 “그래서 야구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5개 채널을 다 보려고 하지만 올해는 나도 모르게 한화 경기에 집중한 적이 많다. 한화 야구는 재미가 있고 스토리도 풍부하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어린 시절 눈을 뜨면 조간 신문을 뒤져 야구 스코어부터 살폈다. 재미있는 기록에 밑줄을 쳐가며 챙겨봤다. 야구는 내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열성적인 LG 트윈스 팬이다. LG를 사랑하는 만큼 만화를 통해 LG를 많이 비판한다. 그의 작품에는 해학과 풍자가 넘친다. 구단이나 선수를 희화화하면 팬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는 “야구팬들이 경기 결과에 얼마나 일희일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견해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팬들도 이걸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원, 사진=강정현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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