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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4)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27)묵로 추도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내친김이니 정재가 묵로의 아들이 되어 묵로의 제사를 지낸 이야기를하고 묵로와 정재의 우정이야기를 끝맺기로 한다.
내가 정재와 동대문시장에서 만난뒤 얼마안되어 정재는 고물상을 집어치고 인사동 집도 처분하여 광나루로 아주 이사해버렸다.
해가 바뀌어 1953년이 되어 피난갔던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서울의 모습이 날로 달라져갈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학교에 나가면서 한편으로 서울신문 논설위원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서울신문사에는 친구들이 많아 사장이 박종화, 전무가 오종식, 편집국장이 최상덕, 이관구와 내가 논설위원이었다. 이때문에 날마다 술안마시는 날이 없었는데 처음에는 빈대떡집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요리집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날 최우석이 사장실에 나타났다. 동대문시장에서와는 딴판으로 말쑥한 신사가 되어 점잖게 월탄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독견 최상덕과 내가 사장실로 들어가니 월탄이 대뜸 우리를 보고,『아, 묵로가 죽었다는구료!』하고 말을 이어 『전주에서 올라온 친구가 광나루 이사람집을 찾아와 전하는데 지난 겨울 전주에서 앓지도 않고 죽었다는거야!』
정재의 설명을 들으면 묵로는 전주로 피난가 그림이 꽤 팔려 셋방도 마련하고 술도 잘마시면서 지냈는데, 어느날 낮에 집에 들어오더니 몸이 찌뿌드드하다고 눕겠다고해 자리를 펴주었더니 드러눕자 곧 스르르 눈을 감고 숨을 거두더라는 것이었다.
정재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고생 안하고 팔자 좋게 죽었네.』『나도 어떻게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어.』
사장실에 모인 친구들이 제각기 이런소리를 하고 떠들다가 필경 오늘 묵로추도회를 여는셈치고 정재하고 한잔 하는것으로 결론이 났다.
술자리에서 월탄은 묵로가 전주로 피난갈때에 흰두루마기에 괴나리봇짐을 지고 지팡이를 짚고 사장실에 나타나 술을 마신뒤 떠날때 『죽지않으면 또 만나세』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정재는 처음부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술이 거나해지자 울음이 터져나와 『묵로야 이놈아, 나를 두고 먼저 가면 어쩌란 말이냐!』하고 대성통곡하였다.
뜻밖에 술자리가 일찍 끝나고 나중에 독견과 정재, 그리고 나만이 남았다.
『우리 묵로녀석의 애인 춘홍이 집에 가볼까?』
독견이 다방골 가까이 오더니 이런 소리를 했다.
『좋지!』
정재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찬성하였다. 간 집은 기생집이었다. 독견과 정재가 다 아는 집인데 독견은 묵로와 오입친구였다.
『춘홍아, 네 서방 묵로가 죽은것도 모르고있니!』
정재는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이 채 나오기도 전에 이렇게 악을 썼다.
술상이 나오고 묵로의 그림을 걸어놓고 제사를 지내자고 독견이 주장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정재가 먼저 벽에 걸어놓은 묵로의 그림에 절을 하고 앉았다.
『내가 축문을 읽을까?』
독견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허청대고 읽었다.
『유세차 을축 정월 무슨 삭 효자 우석 감소고우 현고 이용우 부군-.』하니까 그제야 무엇을 깨달았는지 상앞에 꿇어 앉았던 정재가 벌떡 일어나면서 『에이 이사람! 내가 묵로아들이란 말인가!』하고 펄쩍 뛰었다.
이것을 보고 독견이 먼저 깔깔대었고 춘홍이도 깔깔대었다. 정재는 묵로아들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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