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제 한·일 정상회담을 신중하게 논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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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경축 리셉션에 각각 참석해 희망의 메시지를 교환했다. 역대 최악에 가깝던 한·일 관계가 모처럼 화해 실마리를 찾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50년간 한·일 양국은 애증이 교차하는 시대를 걸어왔다. 양국 관계는 1970년대 김대중 납치 및 문세광 저격 사건으로 국교 단절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됐었다. 2000년대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 교류로 한·일 관계는 최고의 시절을 구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2013년 독도 방문부터 악화일로였다. 이런 시점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두 나라 관계가 해빙 무드로 들어선 것은 다행이다.

 친구는 고를 수 있지만 이웃은 선택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이 지구상에서 소멸되지 않는 한 양국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올해를 새로운 양국 관계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키로 했다는 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사죄 및 침략 표현의 수준 등 훨씬 무거운 사안에서 진전이 안 보이는 까닭이다.

아베 총리는 내각 결정이 아닌 개인 차원의 담화로 발표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란 소식이다.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과하지 않되 한·중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개인 담화의 형식을 빌리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주변국의 문제 제기를 정면으로 대처하지 않고 슬쩍 피해가겠다는 편법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

 양국 정상의 경축 리셉션 교차 참석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 메시지에서 양국의 입장 차는 여전히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과거사 정리는 외면한 채 “향후 50년을 내다보며 양국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양국 정상의 인식이 평행선을 달린다면 정상회담은 쉽지 않을 뿐더러 억지로 한들 진정한 관계 회복은 요원하다.

 아베 총리는 리셉션에서 “한국과 일본은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제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는 듯 양국 정상이 마주하기는 어렵다. 박 대통령 역시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되 일본의 그릇된 역사 인식과 침략 미화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해야 한다. 대일 ‘투 트랙(Two-Track) 정책’은 아베 정권의 잘못을 어물쩍 덮고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외국은 물론 자국의 역사학자들까지 잘못됐다는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